낙태죄 폐지로 낙태단속 시도의 종지부를 찍자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등록일 : 2017/11/12 22:52  편집부 기자   
 
(사진=이유미)

낙태죄 폐지 청원이 23만 명을 돌파했다. 낙태는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간 17만~35만 건 정도 낙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처벌되는 건수도 매우 적다. 이처럼 낙태죄는 사문화되다시피 한데 폐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출산률 증가가 국정목표가 되면서 정권이 입맛에 따라 낙태단속을 거론해왔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박근혜정부, 더 멀리는 이명박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작년 10월 박근혜정부는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처벌강화를 시도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함께 낙태단속을 강화해 낙태 시술비 급등과 낙태약의 음성적 거래 증가를 초래하기도 했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낙태단속 카드를 꺼내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지 않고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여,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을 감추는 효과가 있어서다. 출산률이 낮아지는 원인으로 청년실업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부실한 공적양육인프라, 그리고 여성의 경력단절 등이 지목된다. 하지만 낙태라는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사회문제는 사라지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기적인 여자들이 문제라는 쟁점으로 탈바꿈된다.

여기서 이기적인 여자들이란 어떤 부류를 의미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출산과 분리된 성생활을 하는 여자들, 모성보다 자아실현을 우선하는 여자들,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출산의무를 거부하는 여자들을 지시할 것이다. 한마디로 여성들의 자유로운 성생활,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 여성들의 모성에 대한 선택권행사를 못마땅해 하는 통념이 만들어 낸 함축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낙태할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라는 수군거림이라거나 국가발전을 등한시하는 무책임한 여자라는 눈초리가 꽂히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럼에도 낙태단속을 시도하는 정부의 가장 큰 명분은 생명존중이다. 하지만 생명존중이라는 쟁점은 오히려 부차적인데, 그것은 국가의 출산통제 역사에서 증명된다. 국가는 산아제한을 목표로 할 때에는 낙태를 지원하다가 출산률이 급격히 떨어지자 낙태단속을 시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는 필요에 따라 생명존중을 취사선택해왔고, 이는 여성의 성과 모성을 도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명분의 측면이 크다.

정부의 낙태단속 시도는 생명존중이나 실질적인 출산률 제고보다 이데올로기적 동원의 성격에 가까워 보인다. 낙태단속이 쟁점화 될 때마다 사회문제가 여성들의 개인적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힘을 얻었다. 동시에 여성의 권리는 제약되어야 한다는 통념도 강화시켰다. 결국 이기적인 여자들, 즉 통제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들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감추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낙태단속 강화시도에 대중적인 저항이 커지고 있다. 낙태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꺼려하던 과거와 달리, 지난해 낙태수술 의료인 처벌강화에 반대하여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지금의 낙태죄 폐지 청원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실질적으로는 사문화되었지만 정권의 필요에 따라 시도되는 낙태 단속강화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여성의 권리를 통제하려는 국가의 시도와 통념에 맞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확대되는 대중적 운동에 힘입어, 낙태죄 폐지로 낙태단속 시도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당겨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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