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데이트 폭력이다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장원(노동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등록일 : 2017/12/04 11:12  편집부 기자   
 
(사진=이장원)

나는 전주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에서 또래들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 분기별로 주제를 잡아 매주 독서토론을 진행하는 이 모임은 단순히 책만 읽지는 않는다. 회원들이 내부적으로 기획팀을 꾸려서 강연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시민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리본에서는 이번 가을학기에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캠페인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데이트 폭력에 대해 알아보자. 데이트폭력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을 말하며, 직·간접적인 폭력을 통해 상대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통제하려는 행위이다. 각각을 쪼개서 개별적인 범죄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데이트 폭력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다루는 이유가 있다. 연인 간에 벌어지는 폭력은 ‘사랑싸움’으로 격하되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다뤄지곤 한다. 애인이 마구 폭행하여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와서는 화해를 종용하고 그냥 가버렸다는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다. 심한 경우는 데이트 폭력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2015년 한국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 범죄자 1050명 가운데 11.9%인 102명이 데이트 폭력 관련 살인자로 분류되고 있다. 3일에 1명꼴로 데이트폭력으로 살해당하고 있다. 보다 무게감 있게 다뤄야할 사안이다.

 
▲데이트폭력의 유형 - 데이트 폭력 중 가장 먼저 한 행동(단위:%). 출처=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연구: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중심으로’(2015년). 표 재구성=미주 한국일보.

무엇이 데이트 폭력을 일으키는가? 데이트 폭력을 가로지르는 심리는 상대에 대한 소유욕, 집착 등의 장악심리다. 내 애인은 나만의 것이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은 애인을 강하게 통제하는 걸로 표출되곤 한다. 애인의 옷차림을 강제하거나, 통화목록이나 SNS를 뒤지거나, (이성연인 관계에서는) 애인이 이성을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행동 통제는 데이트 폭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행동 통제와 더불어 정서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애인의 행동을 심하게 통제하는 사람이 애인에게 심한 말을 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고성을 지르거나 때리려는 시늉을 하다 실제로 폭행을 하거나 성추행,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건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그렇기에 경각심과 자아성찰이 더욱 필요하며, 수사기관의 충실한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북대학교 앞에서 캠페인을 하면서 시민들의 반응들을 살필 수 있었다. 여러 주제들로 캠페인을 해봤지만, 이번 캠페인은 시민들의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당장 거리를 거니는 연인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전단을 받은 연인들이 전단의 내용을 보며 “야 이거 너 아니야?” “무슨 이런 걸 다 폭력이라고 해?”라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고, 캠페인 부스 앞에서 전단을 드리자 “저흰 (데이트폭력과) 상관없어요.”라고 하며 차갑게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에 해당하는 언행을 카카오톡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해놓은 피켓을 보던 남학생들은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웃기도 했다. 대놓고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 반대로 고생한다고 격려해주고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던 분들에는 여성들이 많았다.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여남이 놓인 위치가 참 다르다는 느낌을 새삼스레 받았다.

데이트 폭력은 여남을 막론하고 벌어지지만, 살인, 폭행 등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보니 주제에 공감하는 정도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캠페인을 하면서 “너무 과장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의 사례로 제시된 유형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연인들이 사랑의 표현으로 흔히 하곤 하는 행동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뒤바꿔놓은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널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는 연애를 하는 대부분이 갖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 표현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면 좋은 의도가 다 무슨 소용일까?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괴롭혀서 자기에게 종속시키려 하는 건 절대로 ‘밀당의 기술’이 아니다.

연인 관계는 너무나 특별한 관계라고 하지만, 그 또한 다양한 인간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생활에서 그렇듯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 관계라고 해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그 폭력의 선을 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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