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해요?” -이리여고 ‘미쓰리딩’과 함께 한 <생리>간담회-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박슬기 (산부인과 전문의, 페미의학수다 ‘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등록일 : 2018/10/29 12:07  편집부 기자   
 
(사진=박슬기)

교실 창문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가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여기구나, 동아리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놀라운 환호로 맞아주었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이토록 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벅차도록 밝은 기운이었다.

이리여고 독서동아리 ‘미쓰리딩’과의 <생리>간담회. 내가 활동 중인 ‘언니들의 병원놀이’에서 진행한 <생리콘서트>의 ‘십대 ver.’에 대한 기획회의를 겸한 자리였다. 십대로, 학생으로, 이 시기를 살고 있는 자신들의 경험과 화두를 통해 스스로 몸과 건강권을 말할 수 있도록. 학생들 스스로가 주체로서 함께 만들고자 하는 취지였다.

나와 이들의 ‘생리’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생리콘서트> 당시 나눴던 내용을 짧게나마 공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나 자신이 산부인과 의사로서, 만나는 여성들마다 자신의 몸에서 매달 겪는 일임에도 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거의 없는 현실을 공유했다. 또한 여성의 몸을 재생산 도구이거나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여성의 ‘몸’과 ‘생리’ 자체에 혐오적 인식이 덧씌워지고 있음을 짚어 보았다. 이는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성교육 교과서에도 명백히 드러나 있었으며, 올바르고 실질적인 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국민의 절반이 반드시 겪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국가의 ‘재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도, 정작 ‘독성생리대’ 파동은 국민이 결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생리컵과 면생리대 등 다양한 생리용품을 선택할 권리는 보장받아야 하지만, 일회용 생리대가 위험하기 때문에 ‘생리난민’처럼 피해가는 선택이어서는 안된다. 모든 생리용품은 그 안전성을 보장받아야만 하고, 선택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를 되짚었다.

‘생리’는 ‘임신에 실패’한 여성에게 내려진 형벌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성기가 삽입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역시 더더욱 아니다. ‘생리’와 여성의 ‘몸’은 수치스러운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닌, 내 자신의 삶일 뿐이다. 스스로 내 몸의 주체로서 내 몸에 대한 선택을 보장받아야 하며,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 모든 선택에 대해 안전성을 보장받아야만 마땅하다는 선언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탄성에, 때때마다 환호와 안타까움, 답답함과 분노가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도, 혹은 보여서는 안된다는 검열도 없는 솔직한 감정 그 자체. 이런 반응이 나는 너무나 낯설도록 오랜만이었다. 이들의 이 감정이 진실이다. 소위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갈수록 이 진실을 감추고, 다듬고,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는 것을 배우고 익힌다. 그 과정에서 때로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더 많은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특히 청소년의 목소리가 이렇듯 자신의 진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청소년은 당연히도 자신의 정치적 주체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어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주된 화두는 ‘생리공결’ 제도였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시작된 생리공결제는 올해 12년째다. 그러나 여전히 규정된 절차 없이 각 학교별 ‘자율적’으로 시행되며 학교장 혹은 담당교사가 ‘재량껏’ 판단하고 있어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오히려 절차를 더 복잡하게 하여 신청 자체를 어렵게 해야 한다는 교사들까지 있다. 생리결석을 신청했음에도 일방적으로 교사가 병결로 바꿔버린 사례도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뜻밖에도 “얄미워서”라는 답변이 왔단다. ‘매달 (생리공결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게’ 얄미워서. 부모님은 행여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생리 때문에 늦는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거짓말 같다고 반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장난전화를 한다고 119를 없앨 수는 없잖아요. 의심스럽다고 생리공결을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했어요. 병원에 가봐야 생리통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가는 것만 힘들고, 그냥 참고 말았어요.”
“선생님이 거짓말 같다고 하면 그냥 어쩔 수가 없어요.”


거짓말을 하고 생리공결을 받을 수 있다는 의심의 시선도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개인의 권리이고 선택이어야 한다. 결석으로 인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결과는 개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선택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아닐까. 타 학교에서는 생리공결을 받으려면 사용한 생리대를 보여달라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듯 수치심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교육일까. 객관적 증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의심스럽다’는 교사의 개인적 판단만이 불용의 근거가 되는 것은 옳은 일인가.

“oo고에 다니는 친구는 생리공결이 인정이 안된대요. 출석이 성적에 중요하게 반영되는데, 생리통 때문에 너무 아파서 조퇴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절대로 안된다고 했대요. 계속 울면서 학교에서 참았대요.”
“중학교 때는 생리공결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들어본 적도 없어요.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거의 모른대요.”
“1학년 때는 생리공결을 잘 썼는데, 2학년 와서 (선생님이 바뀌면서) 잘 못쓰겠어요. 왜 내가 생리하는데 눈치를 봐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생리공결 쓴다고 눈치 주는 선생님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학교에 따라, 같은 학교에서도 교사에 따라, 생리공결이 인정되는 상황은 천지차이였다. 생리공결 제도는 인권의 차원에서 보장된 권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눈치가 보여서’ 지레 포기한다. 생리공결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매번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왜 내 몸과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하는가.

“생리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권한을 쥐고 있는 게 이상해요.”
“생리는 1주일씩 하는데, 생리통이 보통 이틀씩 심하잖아요. 그런데 왜 생리공결은 하루 밖에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생리를 한 달에 두 번 할 때도 있는데, 사람마다 생리주기도 다 다르고. 그런데 한 달에 두 번 신청하면 안된대요. 거짓말이래요.”
“양호실에 가도 약을 안줬어요, 약 먹으면 ‘여자’ 몸에 안좋다고.”
“선생님한테 ‘생리 터졌다’고 했더니 그런 나쁜 말을 쓴다며 혼났어요.”
“왜 못참냐고 해요. 그것도 못참으면서 나중에 더 힘든 일은 어떻게 참을 거냐고.”
“중학교 때까지는 생리가 부끄럽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와서 선생님 말을 듣고 생리하는 게 부끄러워졌어요.”


‘생리’와 ‘여성의 몸’에 씌워진 혐오와 편견들이, 교사들에게서 학생들에게 그대로 내비쳐진다. 그 혐오가 학습된다. 정상 생리주기 자체에 대한 무관심. 생리통이 있으면 참는 것이 당연하다는 무지. ‘생리’는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 고통은 참고 견뎌야 마땅한 것이라는 강요. 무엇보다, 학생은 약자이고 ‘너에 대한 여타의 권한은 내가 쥐고 있다’는 폭력. 이것이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야 옳은가.

“생리컵을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런 건 애들이 쓰는 게 아니’래요.”
“학교에 생리대 자판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자판기가 있더라도, 사실 오래된 거 아닌가, 위생관리는 되는 걸까, 불안하고 그래요.”
“공용 생리대를 구비해두고 썼으면 좋겠어요. 생리대 기부함처럼, 사물함 위에 통을 만들어 놓고 누구라도 쓸 수 있게.”


이전의 <생리콘서트>에 참여했던 한 여성은 자신이 영국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고 밝히며, 초등과정 성교육에서부터 생리에 대해 남녀가 함께 구체적으로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생리대 뿐만 아니라 탐폰, 생리컵 등 다양한 생리용품에 대해 교육받았고 자신은 이후 쭉 탐폰을 사용해 왔으나, 한국에 와보니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전북도교육감 선거 당시 생리대 무상지급 공약이 있었으며 현재 추진 중이라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생리’란 본인의 선택이 아닌 신체적 조건으로 발생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이 결과적으로 국가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더욱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역시 일회용 생리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탐폰과 생리컵 등 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지원하는 방식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지속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하고 독성물질에 있어 안전한 생리용품이 있다는 것과, 이에 따라 자신의 몸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남녀공학 중학교에서는 생리한다고 말을 못했어요. 생리대를 숨기고 다니고. 왜 그래야 하는지 이상해요.”
“인류의 절반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왜 숨기고 부끄러워야 하죠?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말하고 싶어요.”
“생리를 생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죠. 무슨 (호형호제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홍길동 얘기에 모두 왁자하게 웃는다. 서로의 얘기를 경청하고 끄덕이며 박수로 지지한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있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 들어주고 지지해 주고 함께 바꾸어 나가고자 힘을 모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이 동아리 ‘미쓰리딩’ 학생들의 중심에는 인권과 페미니즘을 끝없이 고민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담당교사가 있었다. 교사 한 명이 학생들에게 수치심과 폭력과 굴종을 가르칠 수도, 세상을 만들어 갈 힘을 가르칠 수도 있음을, 나는 이곳에서 보았다.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한 이유다.

“생리공결도 권리니까 많이 알고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생리복지가 잘 이뤄지면 좋겠어요.”
“내 자신이 생리주체로서 용기를 내고 싶어요.”


마지막 소감을 물으니 이렇게 답하는 학생들. 이미 스스로 훌륭한 정치적 주체이자 시민이다. 이들과 함께 만들 또다른 <생리콘서트>가 두근두근 기대된다. 또 어떤 신나는 균열이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 일어날까.

***‘생리’의 원래 명칭은 ‘월경’이었으며, 이 현상에 대한 혐오적 인식과 금기로 인해 생리적 현상을 뜻하는 ‘생리’로 불리게 되었기에 본 명칭인 ‘월경’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 더 익숙하게 사용되는 명칭인 ‘생리’에 그 금기가 그대로 이식되었기에 그 자체로 ‘생리’라는 용어를 선택해 사용하였음을 밝힌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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