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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 이야기

[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⑦]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편집부 기자 (2016년 09월 29일 22시04분41초)


꿈사랑학교 학생 중에 도현이와 같은 나이의 건우라는 친구가 있다. 작년까지는 일반학교와 병행하며 꿈사랑학교에서 함께 화상수업을 들었지만, 지금은 항암 치료를 종결하고 일반학교에 다니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건우는 여섯 살 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생활을 시작하였다. 백혈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건우에게 찾아왔던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비교적 치료 기간이 긴 편이다.
1년을 병원에 입원해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고, 치료가 잘 되면 그 후로도 27개월 동안 매일매일 항암약을 먹으며 석 달에 한 번씩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긴 스케줄조차, 재발되지 않았을 때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어린 나이에 이토록 힘든 투병생활을 이겨냈음에도 불구하고 건우에게는 또다시 그 지독한 것이 재발하고 말았다. 그렇게 여섯 살 때 시작한 투병생활이 건우가 6학년이 되던 해 4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병원생활을 하다보면 병원이 집인지 집이 병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병원이 집처럼 편하기야 하겠냐마는 어느새 익숙해져 병원생활의 노하우도 생겨나고 옆 사람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여유도 생긴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몹쓸 병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받아들이고 치료에 전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내 옆 침상의 엄마가 보이고 아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변상련이라 하지 않았나? 네 맘이 내 맘이고 내 맘이 네 맘이 되어 때로는 가족보다 더 애틋하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러다 보니, 건우 엄마가 병원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그렇게 가족같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던 옆 침상의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낼 때였다. 치료 중인 건우를 두고 중환자실에 면회 가기도 쉽지 않아 그저 마음 졸이며 빨리 회복되기만을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이 들려오면 마치 내 아이를 잃은 것처럼 억장이 무너진다.
나중에야 알게 될 테지만 옆에 있는 건우가 이 소식을 듣게 되면 느낄 고통과 혼란스러움이 걱정되어 건우 엄마는 큰 소리로 울 수도 없다. 참는다고 참는데도 주책없이 자꾸 눈물이 흐른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건우에게
“우리 건우랑 좋은 데 놀러 다니고 싶은데 못 가니까 속상해서 그렇지~”
하며 둘러댄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건우 엄마는 병원이 싫어진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고 누구하고도 친해지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스러운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싶어 오지랖 넓은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다음부터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고 커튼을 꼭꼭 닫아놓고 생활할까도 싶다. ‘자식이 겪는 고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찬데 왜 이런 고통까지 느끼며 살아야 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건우 엄마는 또다시 옆 침상의 아이를 챙기고 아이 엄마와 언니동생하며 지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시간의 힘들고 지루한 치료과정. 이 시간이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건우는 치료를 종결하고 병원이 아닌 집에서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친구를 만나 함께 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길고 긴 시간의 사이사이에 병원에서 만난 식구들의 웃음과 아픔과 눈물이 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기도 하다.
그 시간들 덕분에 건우와 엄마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남들이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우는 병원생활을 통해 친구와 학교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번 연재는 건우가 직접 쓴 글로 마무리할까 한다.

■ 건우의 글

안녕하세요? 저는 김건우입니다. 저는 여섯 살 때 백혈병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겁에 질려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너무 아파 몸부림을 치기도 했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후 병원생활에 적응하여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고 끈기 있게 치료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섯 살 꼬마였던 제가 백혈병이라는 적을 멋지게 물리쳤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치료를 하고 저는 열세 살 6학년 4월에 치료 종결하였습니다. 종결에는 저를 사랑과 정성으로 간호해주신 엄마의 도움이 컸습니다.

백혈병을 치료하느라 여섯 살 때부터 유치원을 못 다니고 4학년 때까지 학교를 거의 못 다녔던 저의 소원은 학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연필을 잡고 공부할 때 주사를 맞아야 했고, 친구들이 뛰어놀 때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아는 친구들에게 학교 가니까 부럽다고 하면 친구들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이미 소중한 행복이 옆에 있으니까 못 느끼나 봅니다. 건강해서 학교를 다닌다는 행복을.... 이제 저는 건강해져서 학교에 다닙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학교 다닐 수 있는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학교라는 행복을 잘 알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인지 잘 압니다. 저는 학교라는 선물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즐거움을 얻어 갑니다.

제가 만약 아프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아프지 않았다면 저 역시 학교라는 보석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갔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팠던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저는 아팠어도 저의 마음은 더욱 건강해졌기 때문이죠.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고 아픈 친구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내와 끈기를 배웠습니다.

저의 꿈은 작가입니다 열심히 공부해 저의 꿈을 이뤄 오랫동안 저의 간호를 위해 고생해 주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저의 꿈을 위해 책을 많이 읽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꿈사랑학교에서는 매년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계발을 위해 "문예창작대회"를 열고 있다 건우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참가해 매년 상장을 받았고 그렇게 얻어진 자신감으로 인해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글쓴이 김하나는]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에도 꾸준히 문학을 가까이 하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보니 힘들 때도 많지만 덕분에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소중한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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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난 어떤 어른인가?
[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⑧]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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