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8년12월14일19시11분( Friday )



[ culture ]

윤동주 탄생 100년, 사진에 담은 시인의 자취

[인터뷰] 전북대 동아리 ‘시담사’ 회원들...“지키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문수현 기자 (2017년 02월 15일 09시)


14일 전주 남문광장에서 소박하지만 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사진전이 열렸다. 전북대 사진동아리 ‘시담사(시간을 담는 사람들)’ 학생 네 명이 마련한 ‘윤동주 탄생 100년’ 사진전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앙일보가 보도한 윤동주 시인 관련 기사를 보고 “윤동주를 지키자”는 일념을 갖고 대학주관 모험·창의 공모전에 응모·선정돼 2월초 중국 연변 명동촌과 서울 연세대 등 윤동주 시인의 자취가 배어 있는 지역들을 답사하고 각자 3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진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며 자랑할 만한 일을 한 것도 전혀 아니라며 부끄러워했다. 전시는 아쉽게도 이날 단 하루. 기자는 이들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답사 사진과 보고서를 운 좋게 접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이들을 대표해 문다정(국어국문학·2) 학생과 나눈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왼쪽부터 김상혁, 한상아, 문다정, 김주휘씨

◯ 먼저, 함께한 네 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전북대학교 전시분과 중앙동아리 ‘시담사(시간을 담는 사람들)’에서 만나 꾸린 ‘시담사(시를 담는 사람들)’ 팀의 한상아(물리2), 김상혁(물리2), 김주휘(신문방송2), 문다정(국어국문2)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아래 모여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년을 맞은 올해, 시인과 관련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여정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맡은 역할에 팀원 간 큰 경계는 없었지만, 굳이 나누자면 한상아 학우는 통역과 중국 현지 일정(숙소, 예산 등)을 담당했고, 김상혁 학우와 김주휘 학우는 전시회에 지원 가능한 외부업체가 있는지 여러 단체들과 접촉하며 후원(이젤, 책상) 여부를 알아봤어요. 저는 학생과 등 교내와 주로 연락하며 지원 여부를 알아보고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했습니다. 시인에 대한 조사나 여정에 대한 경로, 방문지 선정 등은 모두가 모여 선정했어요.

◯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더듬어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다녀오게 된 것 교내 ‘모험·창의 공모전’을 통해서였어요. 모험창의 공모전은 주제 선정부터 여정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의 주도로 기획하는 공모전이에요. 백지 상태에서 내용을 채워나간다는 게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마침 작년 10월 김주휘 학우가 중앙일보의 윤동주 시인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었던 것이 생각나 팀원 모두 ‘윤동주 시인을 지키자!’라는 일념으로 응모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팀명이 ‘시(詩)담사’, 탐방부터 전시회까지 저희가 진행한 프로젝트명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담사’입니다.

◯ 답사를 위해 공부가 필요했을 텐데요.

‘시인을 지키자!’라는 목적이 정해진 순간 저희는 도서관에서 송우혜 님이 저술한 <윤동주평전> 등 관련 서적을 대여해 오고, 관련된 국내외 장소들을 물색하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와 같은 관련 미디어들을 접했습니다. <동주>를 보고나서, 새삼 이런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우리말을 지켜준 시인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와 동시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더 목적을 분명히 하게 됐죠.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윤동주 장소들의 현재와 중국의 태도를 보이고 알리는 것 말이죠.

◯ 윤동주 시인을 공부하기 위해 송우혜 작가의 <윤동주평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실은 프로젝트 기획 당시 학교도서관에 관련도서로 이 도서만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교도서관에 책이 비치되기 위해서는 이 책이 학우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피력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과 심사를 거쳐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도서관 한 켠에 자리잡은 책이라고 생각하니 신뢰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윤동주평전>은 출국부터 귀국까지 저희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 여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시간대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광양 정병욱 가옥(사진제공=문다정 일행).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로서 절친이었다. 윤동주에게서 받은 필사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잘 보관했다가 해방 뒤에 월남한 유족에게 전함으로써 윤동주라는 시인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송우혜, 윤동주평전, 259쪽).”

2월 1일 집합, 일정을 총 점검했습니다.

2월 2일 쏘카를 이용하여 전남 광양으로 떠났습니다. ‘윤동주 유고보존 가옥’이라고도 불리는 광양 정병욱 생가는 오늘날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게 한 후배 정병욱이 살던 곳이기 때문이죠. 내부에 원고가 보존돼있던 장소가 표기돼있었지만,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어 외관만 촬영하고 전주로 돌아왔어요. 윤동주 시인이 필사한 시집 3부 중 1부를 가지고 있던 정병욱 씨는 학병으로 불려가기 전, 어머니께 이 시집을 소중히 보관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해요. 2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며 애써주셨던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2월 3일 광양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의 계획에 수정할 건 없는지 점검했어요. 더불어 전시회를 위해 인화업체를 알아보기도, 물품 지원 부서를 알아보기도, 인화용 사진을 위한 구도 점검 등 촬영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 비자, 유심 수령 등 출국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요.

2월 4일 연세대학교(구 연희전문학교)의 윤동주기념관과 윤동주시비를 방문했지만 기념관 역시 내부에 들어갈 수 없어 외관만 촬영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종로문화재단에서 관리하는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해 11분 남짓한 영상을 관람하고, 관련된 자료들도 살펴보며 새삼 시인에 대한 공부를 다시 했어요. 근처의 청운공원 역시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서시가 새겨진 그의 시비를 촬영하고 돌아왔고요.

2월 5일 전날 방문했던 모든 장소(연세대학교,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를 다시 방문해 눈과 비가 오는 와중에도 추가촬영을 했어요.

2월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연변(옌지공항)으로 출국했어요. 연길에 위치한 숙소에서 현지 일정을 다시 점검했고요.


▲중국 연변(옛 북간도) 명동촌 윤동주 생가 입구. 사진제공=문다정 일행

2월 7일 연길에서 용정으로 이동해 택시를 통해 시인의 생가와 대성중학교를 방문, 촬영을 했어요. 시간이 없어 명동촌은 둘러보지 못했지만, 한국어가 가능한 생가 관리인께 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가를 둘러봤어요. 대성중학교는 학교 경비원분께 안타깝게도 방학이어서 교문이 닫혀있다는 이야길 듣고, 외관만 촬영했어요. 국내 조사 때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시인의 묘소는 결국 현지에서도 찾지 못했어요.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이후 베이징을 경유해 인천으로 돌아왔고, 귀국 직후부터 사진 작업을 시작해 인화용 사진과 배부용 엽서사진 편집을 마치고, 우드락 판넬을 제작해 14일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에요.

◯ 이번 여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요?

안전이에요. 기획 초기부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시인을 지킨다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일단 저희가 무사히 다녀와야 전시회든 뭐든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특히 중국은 최근 사드, 비자 거부, 한한령 문제 등으로, 부정적인 소식으로 자주 만나는 나라여서 더욱 걱정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출국하고도 여행사 등을 통해 가이드, 현지 통역 등을 알아보며 주변을 안심시켰죠. 하지만 공급이 제법 있는 주요도시와 달리 저희가 방문한 도시 연변은 공급 사정이 좋지 못했어요. 끝내 구하지 못해 저희가 직접 통역 어플과 번역기를 통해 다녀왔지만 저녁 6시 이후 돌아다니지 않고,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워 안전에 유의를 기했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생한 기억일수록 오래 간다는 말을 깊이 체득한 열흘이었어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1일 1고난이 아니냐’ 했을 정도로 매일 매번 다른 난관에 부딪혔는데, 숙소 이동, 출입금지 등 평탄치 못했던 여정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번 전시회에요. 비록 하루이긴 해도, 함축적으로 압축한 것이긴 해도, 저희의 지난 열흘이 모두 담긴 기록이었기 때문이죠.


▲용정 대성중학교. 사진제공=문다정 일행

◯ 중국 방문 현지 분위기를 소개해 주신다면?

저희가 방문한 옌지(연길)와 룽정(용정)의 현지 분위기 위주로 말씀드리자면,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국내에 있을 땐 조선족(연변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 41%)에 관련된 범죄 뉴스, 범죄 영화 등의 영향 때문에 연변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칙칙하고 어두웠어요. 하지만 현지에서 목격한 분위기는 대학가의 경우 한국의 대학가와 다름없이 밝고 생기 있으며, 시장의 경우 한국의 시장과 다름없이 시끄럽고 활기가 넘쳤어요. 비록 일찍 해가 져 도시에 금세 어둠이 내리는, 따라서 밤의 정적도 일찍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무서워할 것 없는 사람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중국 당국이 윤동주를 자국 역사화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12년, 중국 지린성에서 윤동주 생가를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생가 입구에는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비석과 서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를 세우고,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는 현재 윤동주 시인의 국적이 중국으로 표기되고 있어요. 그뿐 아니라 길림신문에서도 ‘윤동주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명분이 섰다’라는 기사로 시인을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 주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주장과 달리 ‘윤동주 시인’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족시인, 저항시인이에요. 윤동주 시인의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이고 일본의 폭압 정치에 시달려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인들이 피난 간 명동촌으로 아예 이민 간 것이 아니고, 잠시 이주한 것이거든요. 또한, 애초에 ‘조선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1954년 이후 조선에서 태어난 한국인을 가리키는 단어로, 1917년에 태어난 윤동주 시인과 전혀 관련이 없어요.

한 기사에서는 중국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요. 중국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중국 역사의 일부로 만들려고 하다 일어난 명백한 오류이며,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어요. 이러한 사건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고, 윤동주 시인을 지키기 위한 시인협회의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작은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우리 국적의 우리 국민을 지키는, 바람직한 세상이 되리라 생각해요.

◯ 다녀온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모험활동 후 전시회까지 마치며 여러 감정을 느꼈어요. 보람도 보람이지만 백지 상태에서 시작된 기획을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꼈던 반면, 윤동주 시인을 두고 뻔뻔한 중국의 태도와 미온한 정부의 태도에서 분노도 느끼고, 나중에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는 일본을 ‘또 저러네’ 하며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마음 같아질까 봐 두려움도 느끼고, 계속 시인을 떠올려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생기고. 많은 생각이 드는 여행이었어요. 또 연변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도 해소되는, 얻은 게 많은 여정이었어요.

◯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 등에 주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국문인협회, 서울시인협회 등 곳곳에서 시인의 탄생 100년을 맞아 그에 관한 여러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뜻깊은 행사들이 있다는 소식 자체만으로 반갑고 좋지만, 시인이 잠들기까지의 과정이 아닌 시인이 잠든 이후, 즉 현재에도 주목하여 행사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개인보다 더 파급력을 가진 만큼 문화적 힘을 발휘해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즐기며 때로 함께 분노도 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누구나 윤동주를 알지만, 누구나 윤동주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윤동주는 이런 시인이었다, 라고 소개하는 자리가 주어진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씻지 못할 친일 행각을 한 일부 문인들과 다르게 윤동주 시인은 부끄러움을 알고, 우리말을 지켜온 문인이었어요. 스스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말은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던 시인, 그래서 고맙습니다.


▲수많은 사진 가운데 9장을 엄선해 해설과 함께 14일 전주 남문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 14일 풍남문광장 전시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저희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끝내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기억을 저희만 간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올해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년을 맞은 만큼 시인 생전의 이야기(송몽규와의 일화나 후배 정병욱과의 이야기 등)뿐 아니라, 사후의 이야기(생가의 현재와 중국의 이야기)들까지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알도록 공유하고 싶었어요. 또 저희가 몰랐던 부분도 배우고 들으며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고요. 그런 목적으로 전시회를 계획하게 되었고, 장소 허락이나 물품 대여 등을 위해 발로 뛰었던 거죠.

◯ 전시를 마친 소감도 한마디 해주세요.

저희가 배치한 책상 한 켠에 방명록을 두었는데 저희가 엽서사진에 넣지 못한 다른 시를 쓰고 가신 분도 계셨고, 배우고 간다는 분도 계셨고, 관련 행사를 알려주신 분도 계셨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신 분도 계셨어요. 관심을 갖고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오히려 저희가 다 고마웠고, 뿌듯했어요. 도움을 주신 곳들 외의 다른 단체들에게서 아무래도 지원이 어렵겠다는 답변을 들을 때에는 “우리 전시회 할 수는 있을까?” 이런 자조적인 말들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한탄들을 단숨에 잊을 정도로 보람 있었어요.

◯ 다녀온 성과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저희는 시인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해온 학생들이 아니기에 이번 전시회를 하면서도 시인, 그리고 시인을 연구하는 분들의 명예에 최소한 누라도 끼치지 말자, 그저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자, 라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그래서 활동을 연장하는 것은 아직 저희의 역량이 부족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책임감과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준비기간 포함) 한 달을 바친 만큼 단발성 전시회로 끝난 것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 자발적으로 가져가신 300장의 엽서사진들이 오늘 이후 저희가 학업에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300갈래의 다양한 길에서 저희의 노력을 알려줄 것이리라 생각해요.

당장 예정되어있는 윤동주 시인에 관한 단체 활동은 없어요. 시인께 부끄럽지 않게 공부도 하고 평전도 읽으며, 개인 차원에서 시인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소식을 찾아보는 일상을 이어갈 것 같아요. 부족한 게 많았는데 보아주시고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14일 전주 남문광장에서의 전시회. 인화한 엽서사진, 사진전 방명록, 메모지, 전시회 취지 설명문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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