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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윤동주의 빛 걷어내기

김주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편집부 기자 (2017년 05월 26일 20시)


(사진=김주휘)

-일반적인 것을 벗어나 다각면에서 바라보자.

‘윤동주 생가에 ‘조선족 애국시인’ 표지석 세운 중국.’
SNS에서 기사를 처음 접하자마자 당황스러웠고 그 뒤에는 분노가 따라왔다.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윤동주 시인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자랑스러운 조선의 애국 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중국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운이 좋게 연변 탐방과 평전 읽기 그리고 스터디를 통해 가까이서 느끼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들을 얻고 문수현 기자님이 주신 윤동주 평전을 2회독을 하게 되면서 윤동주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한 사람 시각으로만 보기에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송우혜 작가님이 쓰신 윤동주 평전을 중심으로 시인의 정보를 일반적인 것이 아닌 좀 더 구체적, 세분화해서 찾게 되었다. 다행히 윤동주 시인은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시인이기에 정보의 양은 방대했고 평소 하던 스터디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들고 가서 평소 윤동주 시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수가 있어서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며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시인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여러 활동을 통해 이 책에 대해 다각적으로 본 결과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보이지 않았던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는 정보의 충돌이었다. 분명 인터넷 네이버 캐스트와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윤동주 시인이 시집을 내지 못한 이유가 당시 일제 강점기 시절의 상황을 걱정한 이양하 교수가 보류를 권했기에 출판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당시 윤동주 시인의 집안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고 있었으며 결국 윤동주 시인은 출판하려는 의지가 많았음에도 그 당시 돈으로 300원이 모자라 출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기존의 정보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종로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윤동주 시인이 사실은 종로에 머문 것은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과 장준하, 문익환과 친우 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문익환과 장준하는 서로 친우였지만 시인과 장준하 선생님은 친분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 등등 기존 정보와 상충되는 점이 많았다.

 
▲윤동주가 생전에 좋아하고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왼쪽)과 백석

두 번째는 윤동주 선생의 시와 삶에 대한 평가가 과대평가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물론 나는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그의 삶을 존경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윤동주 시인의 시보다 입상을 많이 하고 국문학자 평가적으로도 더 좋은 시들이 많았는데 유독 윤동주 시인에 대해 조명이 비춰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 당시 훌륭한 시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실제로 그의 친척 송몽규가 시에 대해서는 그토록 등단하길 원했던 윤동주보다 먼저 입상과 동시에 등단을 하고 삶 부분에서도 독립운동을 앞장서서 할 정도로 주목받아야 할 점이 많아 보이는데 지금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고 이름을 알고 있더라도 윤동주 시인의 그늘에 많이 가려져 명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백석 시인, 정지용 시인 등 생전 윤동주 시인이 존경하던 시인들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윤동주 시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이름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부각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보아 어쩌면 그의 일생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좋았기에 부각된 점도 있는 것과 동시에 냉전 이데올로기와 상충되지 않고, 당시 시에 대한 연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던 80~90년대의 시대상에 거슬릴 부분이 없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의 시는 평가 절하되지 않고 살아남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윤동주가 독립운동가냐고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일파가 아니냐는 답도 나오기도 했다. 시인이 생전에 조선을 깊이 생각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이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니 친일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독립운동가라고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친일파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왜곡이 없길 바라지만 그나마 최근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설민석 강사가 윤동주 시인을 설명하고 영화 동주가 개봉하는 등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어 이러한 시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쿠오카 형무소. 윤동주와 송몽규가 이곳에서 죽음을 당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술연구,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올해처럼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해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윤동주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다. 이 관심이 단기적인 관심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기 위해 각색을 하거나 그 부분만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100주년이라는 이유 때문에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가 단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있다. 또한 지나친 찬양과 명성을 지우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인 것이지 절대 그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각색된 윤동주, 꾸며진 윤동주가 아닌 진짜 윤동주가 나오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를 갖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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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윤동주 평전>으로 재현한 시인 윤동주
문다정(전북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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