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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되살아난 감성

[홍순천의 ‘땅 다지기’(29)]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06월 15일 08시)


(그림=홍순천)

촉촉한 잔디 향기가 새벽공기를 가득 채운다. 하지가 내일 모레지만 이제 겨우 땅을 가르며 속살을 불리는 감자는 꽃을 피울 엄두도 내지 못한다. 모처럼 내리신 단비를 품고 숨을 토하는 앞산자락으로 새벽 조업을 나가는 왜가리 두 마리가 여유로운 초여름 아침이다.

포도알이 굵어지듯 몸피를 키우던 청소년 시절은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강렬한 심장을 달고 팔을 벌리면 왜가리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듯 벅찬 시절은 어느새 먼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때 들었던 음악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추억은 머릿속에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각인되는 듯하다. 강렬하고 비릿한 아까시 꽃 향기와 함께 들었던 음악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는 젊은 날의 감성을 관통하는 사람이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기도 하고, 뚫린 가슴을 메워주기도 했던 그의 음악은 프랑스풍의 부드러운 감성으로 마음을 섬세하게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의 손으로 만든 음악은 음란하다고 규정한 정권은 온갖 음란한 짓을 하다가 막을 내렸다. 상영이 금지된 영화와는 달리 그의 음악은 젊은이들 사이를 폭발적으로 헤집고 다녔다. 라디오가 귀하던 그 시절에도 그의 음악은 어떤 형태로건 귀에 걸려 있었다. 놀라운 감성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다독였던 그의 작업에 감사할 뿐이다.

6,7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였다.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로 인간 내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음악이 있었다. '남과 여', '러브 스토리', '하얀 연인들', '빌리티스', '엠마뉴엘 2',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사랑의 종말을 위한 협주곡' 등의 영화에 감성적인 선율로 옷을 입힌 사람이 프란시스 레이다. 그중의 백미는 '이모션'(Emotion)이었다. 머릿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밀려오는 선율은 늘 귓가에 맴돌았다. 밀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숲을 건드리고 지나가가는 태풍처럼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강렬한 매력이 있는 곡이다. 눈밭 위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꼭 껴안으며 체온을 나누면 온갖 삶의 슬픔과 역경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그의 음악은 사랑을 한껏 부추기는 힘이었다.

세월의 강을 건너오는 동안 그 음악은 까맣게 잊혀졌다.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감성이 파고들 여유가 없었던 탓이리라. 어찌 보면 철없고 사치스런 감성이었을 수도 있다. 시대의 격랑을 관통하며 감성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기도 했다. 자고나면 터지는 온갖 수상한 일과 부조리가 입과 귀를 틀어막는 세상을 용인하는 것은 자기기만이었다. 스스로 세뇌시켜 통증을 회피하고 싶은 비겁한 일이었다. 알게 모르게 거칠어지고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는 동안 '이모션'은 내 가슴 속을 떠났다.

감자밭에서 쇠비름을 뽑으며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기듯 퍼뜩 떠오르는 음악이 있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레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젊은 시절을 관통했던 감성을 만났다. 가슴 속의 먼지를 털어내듯, 한동안 귓가에 걸어 두어야겠다.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모양이다. 유치한 수사가 난무해도 늘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홀로 가는 세상, 거칠지만 다소 합리적이고 공평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면 마음 놓고 감성을 되살려 볼 수도 있겠다.

마늘장아찌를 담는 마음으로 겨울을 미리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주름진 가슴이 탄력을 더 잃기 전에 감성 한 자락 옮겨 두어야겠다. 철없이 즐거워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돋나물이 노란 감성을 드러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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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단오 유감
[홍순천의 ‘땅 다지기’(28)] 진안 봉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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