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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 ]
푸른 꿈이 익는다

[홍순천의 ‘땅 다지기’(33)]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08월 09일 21시48분12초)


(그림=홍순천)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하다. 줄기가 굳어지는 머위는 한낮의 열기에 잎이 오그라지고, 두꺼비는 더위를 피해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이슬 내리는 서늘한 밤공기에 머위는 원기를 회복하고 두꺼비는 다시 사냥에 나서는 팔월이다. 말복에도 여전한 더위는 사람들을 서늘한 계곡의 맑은 물을 찾아 숨어들게 한다. 비정상적인 폭염이다.

주말을 맞아 손님이 찾아왔다. 돗자리와 음식을 챙긴 일행은 덕유산자락이 품은 토옥동(土玉洞) 계곡에 갔다. 남덕유산과 북덕유산 사이를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다. 종종 내린 여름비로 계곡은 맑은 물소리로 가득하다. 적당한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은 일행은 계곡에 흐르는 바람소리만으로도 행복했다.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토옥동 계곡 용연정(龍淵亭)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휴양지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니 더위는 씻은 듯 사라졌다.

손님들은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대안학교 '푸른꿈고등학교'에서 연을 맺은 학부모들이다. 푸른꿈고등학교는 올해 환경부 국가환경교육센터에서 지정하는 꿈꾸는 환경학교로 선정되었다. 환경교육 거점학교로, 대안학교 1세대로 시작한 푸른꿈고등학교는 '자연을 닮은 사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을 실현'한다는 생각으로 운영된다. 작년 말에 16번째 졸업생을 배출하고 19번째 신입생을 맞이했다. '90년대 초반, 의식 있는 선생님들의 준비를 시작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훌륭한 이사진과 교사, 학부모, 학생이 모두 교육의 주체가 되었다. 두 딸이 학교를 다니는 5년 동안 맺은 학부모들과의 인연은 아이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해에 40명을 모집하는 학교에는 전국에서 아이들이 모여든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조화를 이뤄내며 성장하는 방법을 찾는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던 아이들은 전체회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토론을 이어가고 선생님들과의 대화에도 스스럼이 없다. 열린교육을 지향하는 학부모들의 참여도 원활해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끈끈하다. 해마다 세월호를 추모하고, 세종대왕 앞에서 시국선언을 하기도 했다. 5.18에는 마라톤대회를 열어 기리고, 지난겨울 촛불을 들고 광화문의 찬바람을 녹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은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고 기획해서 하는 일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한 일이다. 졸업 후에도 학교 행사에 참석하는 선배들은 한 가족 같은 관계를 드러내는 징표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포용하는 인격으로 자라난다. 아이들을 멀리 기숙사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입생 부모들 등에서는 걱정이 뚝뚝 떨어지지만, 한학기만 지나도 괜한 고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밭을 가꾸고 빵을 만들며 아이들의 키가 한자씩 크는 만큼, 마음 밭이 넓어지고 옹골차게 속이 찬다.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들 또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잘들 어울려 논다. 상대방을 조금만 배려하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토옥동 계곡의 맑은 물을 쳐다보면 절로절로 가는 물길을 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그동안 막혀있던 물꼬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용서할 수 없는 삽질로 세상을 분탕질한 사람들은 열대야가 아니어도 밤잠을 설칠 듯하다. 4대강을 똥물로 만들고, 엉터리 조작으로 생명연장을 꾀한 음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린 시절엔 비가 내리면 고무신을 벗어들고 뻘건 황토물을 막고 이리저리 물길을 바꾸는 놀이를 했다. 하지만 소나기 한줄기 시원하게 내리면 고사리 손으로 막은 물웅덩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난 물줄기는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사정없이 응징한다. 온갖 쓰레기를 몰고 가는 홍수처럼 세상을 맑게 세우는 기운이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푸른 포도가 여름을 지나며 알알이 익어가고 있다. 온갖 풍상과 고난을 겪은 뒤에야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지금의 이 고난이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포도송이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키우는 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푸른 꿈이 익는다. 입추를 지나 말복을 넘겼으니 지난한 더위도 한풀 꺾이겠다. 가을이 온다.

 
▲오랜 땅속생활을 청산한 매미는 허물을 벗고 맹렬하게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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