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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망가진 텃밭

[홍순천의 ‘땅 다지기’(35)]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09월 06일 20시)


(그림=홍순천)

한낮의 햇살은 목덜미를 꼬집지만 저녁에 만나는 공기는 서늘하다. 긴팔 옷을 입고 나서도 모기는 여전히 극성스럽게 팔다리를 물어댄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물러가지 않은 더위에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지지 않았나보다. 여름더위는 여전히 맹렬하다. 텃밭은 봄 가뭄을 버텨냈지만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이틀째 가을비가 촉촉하다. 가꾸지 않아도 억세게 살아내는 잡초 덕에 올 농사는 망했다.

봄부터 텃밭에 풀을 뽑으며 내 손으로 심은 고추가 싱싱하고 탐스런 열매를 영원히 맺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거름을 주고 지지대에 묶으며 다가올 태풍에도 견뎌주기를 기대했지만 한순간에 망가졌다. 하잘 것 없는 잡초들이 순식간에 키를 높여 텃밭을 점령했다. 어이없지만 당연한 결과다. 순식간에 몰아친 그들의 반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다. 잡초는 숨 쉴 틈만 있어도 살아내는 민중의 생리와 닮았다.

저녁 9시를 알리는 '땡'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는 '땡전뉴스'를 봐야했던 젊은 시절,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부채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총칼을 피해 비겁한 현실도피를 조장하던 언론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심초사였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 아부하는 언론과 학자들은 온갖 특혜와 권력을 누렸다. 달콤한 열매에 길들여진 그들의 잔치는 영원할 듯 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다. 그리고 학자들에게 조선의 개국을 선양하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만들게 했다. 한글 최초의 작품으로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고 여겨지는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어용(御用) 학자들은 성은을 입어 빛나는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늘로 사라진 고려 말 충신들의 흔적도 아직 고고하게 남아있다. 오래된 일이지만, 그들의 충절은 역사를 반추하고 미래를 도모하려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귀감이다. 끈질기게 씨앗을 묻었다가 기어이 싹을 틔우는 잡초의 생명력은 하늘이 내려준 은총이다. 축복이다.

최근, 공영방송의 가치와 기능을 되돌리려는 언론 종사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배부른 귀족노조의 투정이라 폄훼하는 일부 수구집단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언론을 장악하려는 현 정권의 농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손에 쥔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발악이라는 것을, 텃밭에 심은 농작물을 살리려 제초제를 뿌리는 억지라는 것을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자신들의 입으로 들어갈 열매에 스스로 독약을 뿌리는 몽니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만 끝까지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무모하기 그지없다.

언론은 사람들끼리 의견을 소통하는 핏줄이다. 그 상호작용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요건이라 하겠다. 언로(言路)가 막히면 동맥경화에 걸린 몸처럼 사회가 제 기능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없다. 그동안 권력의 입맛에만 아부하던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 독이 든 '백설공주의 사과'다. 진정성에 기반한 달콤한 입맞춤으로 멈췄던 숨결을 되살리는 것은 이 시대 언론인들의 사명이다. 동서냉전이 극에 달하던 1950년대, 미국의 상원의원 '메카시'의 극단적인 반공사상(메카시즘)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수구세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한다. 건강한 세상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입니다." 김구선생이 말하자, 언론은 '김구, 통일에 눈이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라고 보도했다는 씁쓸한 유머는 우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참에 지식을 공유하고, 올바른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일깨우며, 불만을 해소해 예술 감각을 살려내고, 사회적 합의를 원만하게 이루어내는 언론의 네 가지 기능이 제대로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신다. 쪽파와 마늘, 양파를 심기 위해 밭을 정리해야 하는데...., 가을비가 게으른 농부에게 빌미를 준다. 까짓, 텃밭쯤이야 망가져도 좋다. 김치전에 막걸리 받아 놓고 한껏 늘어지는 것도 좋겠다. 하루를 공평하게 반반으로 나누는 추분이 되려면 아직 며칠 더 남았다. TV가 재미없어서 저녁시간이 무료해도 참을 수 있다. 텃밭이 망가져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꼴을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 가을비가 고맙다.

 
▲십자가를 등에 진 예수님처럼 오미자는 붉게 익어간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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