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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가을 개나리

[홍순천의 ‘땅 다지기’(36)]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09월 20일 23시)


(그림=홍순천)

일교차가 큰 요즘, 아침이면 어김없이 안개가 가득하다. 가을안개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긴팔 옷을 꺼내 입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본다. 선득선득한 공기에 노랑어리연은 더 이상 꽃대를 올리지 않고 텅 빈 포도나무 덩굴에선 마른 잎만 바람에 떨어진다. 밤하늘을 누리는 늦반디불이 반가운 계절이다.

여름엔 흰색, 겨울엔 검은색 교복만으로 수인(囚人)처럼 빡빡머리 학창시절을 보내야했던 청소년기엔 이맘때가 제일 을씨년스러웠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날씨에 반팔 여름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면 경원선 역사에 가득한 안개 속으로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득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물길처럼 세상을 모르던 그 시절엔 밝은 눈으로도 세상을 읽을 수 없었다. 먼 길을 에둘러 고향으로 돌아온 나그네처럼 가쁜 숨을 정리하고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자 눈이 어두워졌다. 돋보기를 치켜 올리며 만나는 세상은 여전히 혼미하지만 열매에 단맛을 더하는 가을 햇살이 반갑다.

그 가을날, 학교 가는 길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학교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었지만 근처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던 음악이 그나마 활기를 주었다. 알록달록한 꽃잎 사이로 우연히 노란색 꽃잎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에 핀 개나리였다. 봄에만 피는 진달래를 가을 길가에서 만난 것은 충격이었다.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하고, 봄 햇살을 닮은 가을 햇살에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는 봄처럼 화사하지 않았다. 서글프고 애잔한 노란색으로 간간이 피어있는 가을 길가의 개나리는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들을 닮았다.

산골에서 살면 단풍을 보러 따로 나들이 하지 않는다. 화려하진 않아도 자연스럽고 고운 단풍이 코앞에 펼쳐진다. 매순간, 하루도 똑같지 않은 자연은 일사천리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세상을 탓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다. 그 단풍을 배경으로 길가에는 가을 개나리가 어김없이 피어올랐다. 개나리꽃은 단풍에 치여 눈여겨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제철을 알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개나리는 봄에 피어야 제격이다. 우리 삶도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요즘은 세상을 기망하는 질풍노도에 쫓겨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현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여러 사람도 한순간은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세상 어느 곳엔가 씨앗을 감춰 둔 잡초처럼, 한 순간에 세상을 점령할 진실에 대한 열망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성난 파도처럼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에 엇박자를 놓으며,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열망을 보고 있자면 가을에 핀 개나리가 떠오른다. 철을 잃은 생명은 애잔하다. 아직도 제 철이라는 착각이 안쓰럽다. 돋보기를 추켜가며 만나는 세상은 참담하다. 아직도 온갖 모사와 착각을 벗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겨울옷이라도 한 벌 꺼내주고 싶다.

보라색 물봉선이 한창이다. 아버님 산소에 가는 길엔 늘 물봉선이 피어있었다. 흔하디흔하지만 내겐 부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신 어머니의 첫 기일이 다가온다. 한창 피어오른 물봉선이 마중 나온 길을 따라 산소에라도 다녀와야겠다. 객지에 나가있는 딸들을 불러 모으고, 아내와 함께 큰누이 집으로 갈 채비를 하며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렇게 덧없는 세월을 움켜쥐고 몸부림쳐 봐야 아무짝에도 쓸데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씀이 만고의 진리다.

가을에 핀 개나리의 배웅을 받으며, 내년에는 꼭 봄에 피어오르라 당부해 본다. 변변치 않은 음식을 챙기는 손길이 부끄러운 가을이다.

 
▲높아진 하는 아래로 가을이 깊어간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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