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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가출

[홍순천의 ‘땅 다지기’(37)]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10월 04일 23시)


(그림=홍순천)

평화를 노래하는 가객 홍순관 씨를 만나고 싶어 보따리를 쌌다.

평화를 노래하는 가객 홍순관 씨를 만나고 싶어 보따리를 쌌다. 아내는 내 외출을 반기는 눈치다. 진작부터 별로 쓸모없는 남편이 집을 비우는 것이 그리 서운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박새와 쑥부쟁이가 배웅하는 길이 산뜻해서 다행이다. 산골에 사는 특권이다. 무주 안성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엉덩이를 혹사시켜야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7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4명의 아이를 낳아 모시며 남원에 살림터를 잡은 전직 신부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벌써 코앞에 어른거린다. 바보 같은 '이반의 마을'에 가려니 오전부터 '쐬주'가 그립다.

외유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추석을 앞두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져 집에만 있기는 아쉬웠다. 양말과 속옷을 한 벌씩 더 챙기고 나선 길에 핀 돼지감자 꽃이 노랗다. 무리한 일정을 응원하는 눈치다. 제철을 누리는 들꽃들이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일정이 빡빡해도 등에 진 짐이 가볍다.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먼 시간을 돌아와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입술이 그리운 한가위다. 길이 막혀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즐겁다.

헛꽃을 피우지 않는 대추나무처럼 옹골지고 단단한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을 지키고 있었다. 쓸쓸한 무인도처럼 홀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을 만나면 사라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물고나온 고독은 사랑으로 가벼워진다. 가출은 해 볼만 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날에 해야 할 일이다. 작은 책방을 채운 사람들의 덕담과 위로를 짊어지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지난밤의 과음과 수면부족으로 몸은 무겁지만 마음이 가볍다. 지극히, 평화를 갈망하는 홍순관 씨의 노래가 귓가에 쟁쟁하다. 가을이 깊어가듯 그의 사랑이 깊어가기를 바란다.

추석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고리다. 지극한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보조 장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학교 운동장에는 일찍부터 머리 희어진 친구들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안주 대신 추억을 곱씹으며 하루 종일 술잔을 놓지 못한 이유는 갈증이 덜미를 잡은 탓이다. 추석에도 갈 수 없는 어머니의 집을 코앞에 두고 나누는 소년시절은 어느새 백발이 되었다. 검은 색 목조 교실 앞에 흐르던 라일락 향기는 사라졌지만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청춘이 남아있었다.

송편을 빚으며 사람들을 기다리던 추석은 이제 사라졌다. 뻔하디 뻔한 골격처럼 잔해만 남아있는 추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제 더는 길쌈을 하지도, 반달모양의 송편을 빚지도 않는다. 대나무 소쿠리를 들고 뒷산에 올라 솔잎을 뜯던 일도 없어졌다. 하루 종일 '뽕짝'거리는 소음에 갇혀 내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일만 남았다. 자본이 만들어준 그림 속에서 내 그림자를 찾으려 애써야 할 뿐이다.

조율이시(棗栗梨枾)를 주문처럼 외우시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추석이다. 붉은 대추는 임금의 옷을 상징한다.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정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조율이시, 홍동백서(紅東白西), 자식의 성공을 기대하며 어려운 시절을 버텨냈을 아버지가 그립다. 어린 시절을 버틴 친구들과 함께한 가을 운동회는 귀밑머리 하얀 추억으로 남았다. 가출을 접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 년 내내 축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또 내년을 기다린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편지를 들고, 두근거리는 우체국 앞에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며 답장을 기다리던 세월이 그리워진다. 가을이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배낭을 메고 가출을 마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추석이다. 음모하듯 또 다른 가출을 꿈꾸는 가을이다.

 
▲쑥부쟁이처럼 끈질긴 가객 홍순관, '이반의 마을'에 격려의 박수를 드린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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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가을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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