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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키우기

[홍순천의 ‘땅 다지기’(39)]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11월 02일 00시)


(그림=홍순천)

며칠째 찬 서리가 내려 아침이면 지붕이 하얗다. 입동치레를 하느라 난방을 하지 않으면 서늘한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따뜻해진 지구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아직 자연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서리가 내리면 겨울을 버티기 위해 대추벌은 월동 준비로 종적이 묘연하다. 길고 무더운 여름을 거쳐 가을을 지나는 요즘, 정력에 좋다는 노봉방주(露蜂房酒)를 만드느라 수난을 당하던 말벌들이 한시름 놓는다. 입동이 다가와도 양파를 심지 않은 게으른 산골 촌놈에게 이젠 서릿발 같은 경고장이 날아오는 시절이다.

오래전부터 양봉을 권유한 덕유산 자락의 어르신이 따뜻한 날을 골라 벌통을 싣고 오셨다. 마당가 따뜻한 양지를 골라 벌통 세 개를 옮기고 겨울 채비를 했다. 벌들은 이사 온 집 주변을 살피느라 날갯짓이 분주하다. 가을햇살 가득한 마당에 앉아 새로운 식구들을 살피느라 오후 내내 분주한 하루였다. 꿀벌들은 해질 무렵에야 날개를 접고 하루를 정리했다. 벌들의 노역으로 얻은 달콤한 꿀을 나눠먹을 생각으로 벌써부터 입술이 달달하다.

어린 시절 요람이 되어주던 뒷동산은 온갖 생명의 보금자리였다. 촛불을 켜들고 밤에 찾아가면 손바닥만한 사슴벌레가 그 씩씩한 위용을 자랑했고 낮에는 참나무 진액을 탐하는 장수말벌이 맞아주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그 시절에는 이들이 정말 좋은 친구였다. 검정고무신을 벗어 그 코끝에 말벌을 낚아채서 빙빙 돌리다가 땅바닥에 패대기치면 말벌은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 틈을 노려 무시무시한 벌침을 뽑아내면 어른 손가락만한 당당한 위용이 하루 종일 훌륭한 놀잇감이 되었다. 군용 수송기에서 뿌려대던 전단지를 주우러 다니던 시절에 말벌은 하늘을 날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작은 위안을 주었다.

벌은 곤충 가운데 가장 큰 무리다. 전 세계에 약 10만 종이나 있고, 우리나라에도 900종이 있다고 한다. 벌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몸길이가 1mm도 안 되는 것부터 7cm가 넘는 것도 있다. 봄에 꽃이 피면 제일 분주하게 일하는 벌들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꿀을 따면서 꽃가루를 옮겨 작물의 수분을 책임지는 그들의 노역이 없다면 종자개량과 농약을 개발하는 인류의 노력이 허사다. 벌이 멸종하면 지구가 망한다고 했다. 지구상의 수많은 꽃과 식물들의 수정이 꿀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꿀벌이 사라지면 초식동물이 사라지고 육식동물 또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이내에 사라진다고 아인슈타인이 경고했다. 하찮은 놀잇감으로 대하던 벌들이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무지함을 일깨우는 천재의 일갈이다. 최근에 벌이 집단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심각한 어조로 회자되고 있다. 전자파나 공해의 탓으로 벌들의 소멸을 변명하지만, 결국 인류의 무자비한 탐욕이 낳은 농약과 욕망이 스스로의 숨통을 죄고 있다는 사실 앞에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찮게 여겼던 국민이라는 꿀벌들을 통제하고 유린했던 치졸한 권력자들의 속내가 낱낱이 드러나는 요즘, 더더욱 반가운 손님이다.

동쪽으로 흘러가는 구름에 가린 보름달에 의지해 벌통의 숨결을 살폈다. 어두워진 눈으로 속속들이 살필 수는 없지만 날갯짓을 멈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고 돌아서는 밤이 편안하다. 겨울 문턱에서 귀한 생명들을 맞이한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덕유산 자락에 예기치 않은 둥지를 틀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해 감사하다. 우연히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온 낯선 바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지루한 일상을 털고 나올 기회를 준 벌들이 고맙다.

11월, 달력을 넘기며 더욱 빨라진 세월을 느낀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부채도 늘어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벌떼는 이미 노래를 시작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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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천의 ‘땅 다지기’(38)] 진안 봉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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