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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추억여행

[홍순천의 ‘땅 다지기’(40)]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11월 15일 22시58분58초)


(그림=홍순천)

지붕 위에 서리가 하얗다. 소금처럼 지붕을 절인 서리는 갯것처럼 상하기 쉬운 인간들을 향한 경고처럼 차갑다. 일찍부터 서릿발이 쟁쟁한 산골에 살다보면 해산물이 그립다. 바다가 그리울 땐 짜디 짠 소금에 절여놓은 굴젓을 꺼내 밥을 말아 먹는다.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풍기던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정겹다. 어리굴젓에서는 부드러운 땀내가 난다. 겨울바람을 견뎌내며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지문처럼 맨들맨들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굴젓은 산골 촌놈이 누리는 아름다운 호사다.

금으로 만든 잔에 채운 달콤한 술 같지는 않지만, 오래된 일기장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순수할 때 만난 친구들은 유행이 지나도 버릴 수 없는 옷처럼,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생생하다. 징그러운 인연이다.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바다는 풍랑 주의보로 심란하다지만 일탈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보따리를 싸고 차에 오르는 내내 어쩔 수 없는 기다림에 목마르다.

덕적도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인천에 갔다. 걸걸한 막걸리가 연상되는 그의 목소리가 연안부두를 떠나는 친구들을 반기지만, 서해를 찾아온 너울 깊은 파도에 배가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침 라면에 소주를 곁들인 일행은 무사히 인천을 떠나 덕적도에 도착했다. 술에 절어 벼르지 않은 칼처럼 무뎌진 중년의 가슴으로 만나도 바다는 여전히 일렁이는 파도처럼 설렌다. 차갑고 거친 바람은 서해를 흔들고 있었다.

섬을 떠나거나 들어가는 사람들 모두 얼굴이 발그레하다. 거친 파도가 무색하게 설레는 표정이다. 바람을 맞으며 부두에 마중 나온 친구 얼굴에는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깊다. 인천 앞바다에는 170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한때 여행자들로 넘쳐났다던 덕적도에는 넓은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이 고즈넉했다. 비조봉(飛鳥峯, 292m)에 올라 바라본 바다는 수상한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작은 섬들 사이를 지나는 고깃배들은 서둘러 항구로 들어오느라 줄을 섰다. 뱃사람들과 섬사람들의 일상을 듣는 내내 바람과 비, 안개에 생활이 매달린 섬 생활의 애환이 느껴진다.

산을 내려와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해안도로로 넘쳐 들어오는 바닷물을 피해 도착한 포구에는 성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몸을 웅크린 바위 절벽을 거침없이 두드리는 파도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뒤로 물러서다가 다시 돌진하는 포말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병처럼 해안절벽을 공략했다. 서해 바다에서 그런 파도를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거친 파도는 바다를 뒤집어놓는다. 파도가 지나고 잠잠해지면 물이 맑아지고 고기도 더 잘 잡힌다고 했다. 때론 거칠게 몰아붙이는 파도가 두렵고 조업이 불가능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요즘 우리나라를 덮친 거센 파도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감내할 일이다.

통보리사초가 군락을 이룬 서포리 해안에도 바람이 거셌다. 뒷짐을 지고 파도를 피해 바닷가를 거니는 여섯 명의 중년들은 말없이 상념에 젖었다. 젊은 날의 추억과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느릿느릿 백사장을 거니는 풍광이 가슴에 새겨졌다. 해안으로 연결된 깊은 소나무 숲을 걸으면, 섬을 살리려 애썼던 푸른 눈의 신부님 이야기와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설명하는 친구의 걸쭉한 목소리가 찬바람을 녹였다. 봄을 준비하는 해당화 군락이 겨울바람을 견디며 빨간 열매로 일행을 반겼다.

해안가 외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숯으로 불을 피우고 솔방울을 모으며 일행은 아무도 없는 마당을 독차지했다. 거나해진 손에 술병을 거머쥐고 부르는 노래에 밤이 깊어갔다. 가슴에 남겨진 그림 한 장을 품고 잠이 들 때까지 파도는 어린아이처럼 보채고, 소나무 숲은 웅웅 중저음 뱃고동 소리로 화음을 넣었다. 세월이 흐르는 소리다. 추억여행은 또 그렇게 사진 몇 장으로 남아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각자의 길을 걸어온 친구들이 모였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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