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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바꾸며

[홍순천의 ‘땅 다지기’(43)]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7년 12월 27일 15시32분32초)


(그림=홍순천)

12월 말, 달력을 바꿔야할 때다. 일찍 찾아온 추위는 세상을 꽁꽁 얼리고, 채 녹기도 전에 다시 눈이 내리는 혹독한 겨울이다. 지난밤에도 예기치 않은 눈이 내렸다. 어슴푸레 밝아 오는 새벽에 눈발은 폴폴 세상을 덮고 있다. 덕유산 마루는 진즉부터 하얗게 흰 백발을 빛내고 있었다. 글자 큰 달력을 걸며 지난 한 해의 일이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어느 해나 사연이 많지만 돋보기를 추켜올리며 훑어본 지난 달력에는 유난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년은 무술년(戊戌年), 개띠 해다. 1958년에 태어난 개띠들이 회갑을 맞는다. 천간(天干) 지지(地支)가 어우러져 60년을 흘러가다가 태어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들에겐 의미 있는 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시절의 대표주자인 '58개띠'들의 인생에는 참으로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비단 그들만의 일은 아니다. 전후 6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들은 극심한 사회변화, 음모와 폭력으로 가득한 정치 환경을 몸으로 겪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쟁을 겪은 세대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빠르게 변하고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숨죽이며 줄서기 해야 했던 비굴함이 치욕스럽고 부끄러워 가슴이 너덜너덜 찢어진 세대다. 이미 장성한 자녀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평생 앞만 보며 달려온 세상에 회의가 생긴다. 혼란스런 세상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가슴 치는 자책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정신없이 변한 60년은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은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학교에 갔다. 콩나물시루같이 바글바글한 목조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사육 당했다.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으며 관제집회에 끌려 나갔던 고등학교 시절엔 김일성을 불태웠다. 산업현장에 내몰린 젊은이들을 공돌이 공순이로 비하하던 세상에서 그들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뭉개졌다. 권력의 눈치만 보도록 길들여진 불행한 세대다. 정권에 충성하도록 강요당한 가슴에는 자유가 싹틀 기회가 없었다. '58개띠'로 대변되는 세대는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은퇴를 해야 할 시기에 맞닥뜨려졌다. 숨 고를 틈 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며 조안 바이즈(Joan Baez)의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백골단에게 쫒기고, 고문으로 죽어가도 진상을 알 수 없던 시대는 그래도 지나갔다.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아 온 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단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내가 바로 그 세대니까. 먹고 살기는 훨씬 수월해졌지만 신분의 차이는 더 단단해졌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철벽세상의 수없는 벽에 부딪혀 하루살이처럼 목숨을 잃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잘 살아 온 것일까? 바람처럼 지나간 60년을 돌이켜봐야 한다.

춥고 눈이 많이 내려야 겨울은 제맛이다. 겨울다운 추위를 견뎌야 봄이 훨씬 화사한 법이다. 추위를 덮는 눈발이 여전한 창밖을 바라보면 같이 살던 반려견이 떠오른다. 어깨에 앞발을 올리고 바라보던 그 맑고 깊은 눈동자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눈이 내리면 함께 강가를 산책하며 펄펄 뛰던 우아한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집 뒤에 묻었다. 흰 눈처럼 빛나던 그가 그립다. '58개띠'의 세상은 이제 저물어간다. 숨 가쁘게 살며 세상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올해 달력을 떼어내며 60년이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동지가 지나고 일 년 중에 제일 춥다는 소한(小寒)이 코앞이다. 긴 밤, 어깨를 감싸며 추위를 녹여주는 벗이 있다면 봄이 훨씬 화사하겠다. 새 달력을 벽에 걸며 봄을 기다린다. 눈 내리는 겨울이다.

 
▲눈이 내리면 친구가 그립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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