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8년06월22일09시41분( Friday )



[ opinion ]
‘전북대 미투’ 그 이후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박슬기
(산부인과 전문의, 페미의학수다 ‘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편집부 기자 (2018년 03월 10일 20시59분56초)


‘만약’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진=박슬기)

지난 3월 1일 새벽. ‘전북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SNS 익명 페이지에는 전북대학교 졸업생임을 밝힌 여성이 2013년 전 모 강사에게 당한 성폭력 경험을 상세히 폭로한 글이 게시되었다. 이 글은 ‘전북대 미투’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퍼져나갔으며, 가해자로 지목된 전 모씨가 2016년 인권영화제 당시 자원봉사자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와 동일인임이 밝혀져 더욱 큰 파장이 일었다.

소위 ‘전북대 미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소 인권문제와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이 있던 여성(미투 당사자, 당시 전북대생)은 인권단체의 대표이며 관련 교양 수업을 하고 있는 전씨의 강의를 듣고 인권활동가로서 신뢰하며 친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전씨가 점차 둘만의 개인적인 관계를 요구하고 손을 잡는 등의 행동을 했으며, 연애하자(전씨는 당시 기혼 상태), 단둘이 워크샵을 가자, 방은 하나만 잡고 내가 너를 안아주겠다, 등의 요구를 지속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이 이를 거부하자 ‘내가 너 성적 뭐 줬을 것 같냐’며 성적을 빌미로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는 증언도 포함되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인권단체에 속해 있던 강사 K씨와 또 다른 K사무국장 역시 이 여성과 단둘이 술자리를 만들고 억지로 손을 잡거나 자기 집에 가자는 등의 추행을 일삼았다고 증언했다.

이와 같은 ‘전북대 미투’에 대해 알고 있는지, 필자의 지인인 전북대 학생에게 물었다.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 교수 ‘그런 거’로 완전 유명해요!” 학생의 답변에 따르면, 전북대 강사 재직 당시 전씨는 학생들을 조별로 나눈 뒤 각 조마다 반드시 자신과 함께 술을 먹도록 하는 이상한 법칙을 강요했다고 한다. “(술을) 꼭 먹어야 돼요. 제 친구인 남녀 커플이 같은 조에 있었는데, 여학생한테 ‘남자친구 빼고 나랑 단둘이 술 먹자’고 했다더라구요.” 이러한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성추행은 학생들 사이에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라고 했다. 성적을 빌미로 삼아, 이러한 추행을 참고 받아주면 성적이 잘 나온다는 소문도 파다했다고 한다. “근데, 그 교수 과목이 뭔지 아세요? <인권의 이해>에요, 인권.”

심지어 <인권의 이해>.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당시 학생들이 배웠던 ‘인권’이란 무엇이었을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존엄한 권리인 ‘인권’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한 개인의 권력을 위한 폭력적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인권’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뿐만 아니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3명이 속해있던 인권단체는 ‘전북인권교육센터’이다. (전북인권교육센터는 미투 폭로 이후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이들은 해당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음을 밝혔다.) 이 정도의 인권의식을 가진 채 전북대 이외에도 지역의 인권교육을 담당해 왔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가해자들이 소위 인권활동가로서 이것이 성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사실 또한 더욱 그렇다. ‘전북대 미투’에 이어진 여성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씨는 스스로 지역 인권운동의 권위자임을 끊임없이 내세웠다고 한다. 미투 고발 여성 역시 “그때 인권단체에 대한 환멸로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고 고백했으며 이후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전북지역 인권 분야에서는 ‘탑’이라고 자평한 그들을 무조건 만날 것 같아”서 인권활동가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전개는 2016년 성폭행 사건에서도 마치 데자뷰처럼 반복된다.

2016년 성폭력 피해여성은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았기에 전주 인권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영화제 뒤풀이에 참석한 전씨는 당시 전북도청 인권팀장이었으며, 스스로 지역의 인권활동 권위자로 자신을 소개했고, 피해여성이 받은 전씨의 명함에는 지역의 명망 있는 인권단체와 관련된 직함이 5개나 적혀 있었다(추후 확인 결과 이 직함들 중 다수는 교묘한 사칭이었다). 실제로 피해여성은 사건 발생 당시 전씨를 ‘인권영화제 대표’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처럼 전씨는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내세우며 술자리에서 추행을 지속했고, ‘친구 같이 느껴진다, 말을 놓아라’ 등의 언사로 친근감을 만들고자 했다. 결국 만취한 피해여성을 집에 데려다 준다며 일행으로부터 분리시킨 후 모텔로 데려가 강간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전씨는 사죄는커녕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며 합의된 성관계였음을 주장했고, 시민단체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피해자 조사조차 없이 가해자만의 일방적인 조사 후 무혐의를 선언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으며, 피해여성에 대한 2차 가해가 지속되었다. 거듭된 검찰의 항고 기각에 대해 대책위는 광주고등법원(전주재판부)에 재판을 열어 달라는 재정신청을 했고 1000여명의 탄원서가 모아졌지만, 8개월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법원은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촉발되었던 법조계 내 성폭력 문화를 상기할 때, 철저히 가해자 남성 중심적인 사법부의 성차별적 인식이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사건으로 인권팀장에서 파면된 전 모 씨는 심지어 전북도청을 상대로 소청심사를 제기하는 파렴치함을 보였다. 더욱이 전씨는 시민단체 활동가인 지인들을 통해, 본인이 억울한 피해자라며 피해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고 지속해 왔다. 이에 이번 ‘전북대 미투’가 폭로되기 직전까지 일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전씨의 구명운동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전씨 성폭력 사건 대책위에 참여했던 전북 내 진보정당 관계자는 “검찰 항고 기각 당시, 공정한 재판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어요. 그런데 당내 활동가 몇몇에게 연락이 오더라구요. 그 사람(전씨)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 잘 아는데 자기는 결백하다고 하더라, (가해자) 가족들 불쌍하게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전씨가 계속 작업을 하고 다니는 거죠.”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전북대 미투’ 이후 전씨는 어떠한 입장 표명조차 없이 외부와 일체의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이 ‘미투’의 파도가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는 전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이처럼 피해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우월한 지위와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내세워 저지른 전씨의 성폭력은 명백한 범죄일 뿐이다. 단언컨대 이에 있어 가해자의 입장에 공감해야 할 이유란 없다. 술을 같이 마셔서, 술에 취해서, 웃어 줘서, 치마를 입어서, 죽기살기로 저항하지 않아서, 그 어떤 것도 결코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이유란 될 수 없다. 2013년 우리 사회가 만약 이것이 성폭력이라고 외칠 수 있는 곳이었다면, 만약 피해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가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곳이었더라면, 그래서 만약 모두가 나서서 응당한 처벌로 전씨를 제지할 수 있었더라면, 2016년 성폭력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투 고발 여성 역시 5년이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거운 마음의 짐을 떠안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인권활동가로서의 꿈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 또한 인권활동에 대한 신뢰를 잃은 채 온갖 2차 가해를 포함한 몇 갑절의 고통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만약’을 생각하며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함께 느껴야만 한다. 그 ‘만약’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반드시 뿌리 깊이 파헤쳐 뒤집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미투 고발 여성은 전씨를 포함한 가해자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문을 요구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은 전씨가 영원히 시민사회단체 영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할 것을 원했다. 두 여성의 요구는 같다. 더 이상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씨가 인권을 운운하며 또 다른 이에게 상처 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한데 모여, 단지 과거에 전씨가 소속됐던 단체를 넘어서서 시민운동사회 전체에서의 전씨의 영구적인 제명을 결의해 줄 것을 바란다. 전주재판부는 재정 신청을 속히 승인하여, 피해여성에게 공정한 재판의 기회를 보장하고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릴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전씨를 포함한 가해자들은 이제라도 진심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피해여성들에게 사죄해야만 할 것이다. 사죄는 결코 처벌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인권’을 논하며 살아왔던 스스로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더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트위터로 보내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페미의학콘서트 ‘낙태’ : 진짜 죄는 낙태‘죄’다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박슬기(산부인과 전문의, 페미의학수다 ‘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 최신뉴스

구도>조직>선거운동, 그리고 선거제도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장원(노동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부안과학축전, 융합인재 꿈 키운다
전북과학사랑실천연구회 주관 9일 열려


9월 1일자 임용예정 교육장 공개모집
중등 교장, 중등 장학관 출신...22일까지 지원


전북형 자유학기제 학부모연수
19일 중학생 학부모 350여명 대상


교육부, 온라인 공개강좌 제공
직업교육·전공기초·한국학 등 23개 실용강좌 선정 발표

 





회사소개 | 개인정보관리지침 | 청소년 보호정책 | 저작권 안내 | 광고안내 | 고충처리
 

제호: 전북교육신문 |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66 | 등록일자: 2013.11.6 | 발행인: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 임기옥

편집인: 문수현 | 종별:인터넷신문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380 (금암동)

 

전화: 070-7434-4800 | 팩스: 063-900-3789 | 메일수신: jbenkr@gmail.com | * 전북교육신문은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에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