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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감자 심을 때

[홍순천의 ‘땅 다지기’(50)]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8년 03월 21일 19시)


(그림=홍순천)

어김없이 봄은 다시 왔다. 적당한 거리에서 견제하는 밤과 낮이 공평하지만 춘분은 추분보다 더 설렌다. 추분은 다가올 겨울을 경고하지만, 춘분은 생기 가득한 세상을 속살거린다. 잔디를 태우며 봄을 준비하는 마당엔 연인의 숨결처럼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에 감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부추가 새싹을 올렸다. 상추모종 몇 개 꽂고 물을 주는 아내의 등에는 봄 햇살이 꽃처럼 화사하다.

작년 이맘때, 봄이 왔지만 여름이 지나고 겨울을 넘기도록 답답한 속내가 풀리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변비에 걸린 듯 속이 답답하고 시끄러웠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이 내 던지는 껄끄러운 잡음은 날카로운 풀잎처럼 일 년 내내 상처를 주었다. 괴로운 염증을 끌어안고 야윈 가슴엔 먼지처럼 폴폴 날리는 분노만 분분했다. 파도가 거세도 꼼짝 않는 바위처럼 고질적인 세상의 병폐는 견고했다. 정녕 봄은 오지 않으려나? 일 년 내내 뚫리지 않는 체증은 언 수도관을 녹이듯 지난한 통증이었다.

올봄에는 공기가 사뭇 다르다. 새싹이 돋아 오르듯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기운이 넘친다. 여성들은 서푼어치 권력이 요구한 폭력적인 성관계를 폭로하며 '미투'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성문제 뿐 아니라 취업과 분배의 불평등, 폭력적인 갈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쉬쉬했던 3, 5공화국의 폭력과 살인은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잠시 숨 쉴 틈이 생겼지만 보수라 자칭하는 수구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지난 10년간 그나마 무지막지한 폭력이 난무하진 않았어도 늘 찜찜하고 답답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꽁꽁 감춘 그들은 감시와 정보 통제를 들이댔다. 여론을 조작하고 부정이 난무했지만 자유를 빼앗겼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왠지 늘 답답했다.

젊은 날,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혼란을 야기했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는 감금이 처벌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믿음에 상처를 냈다. 폭력보다는 감금을 택한 현실이 더 진보된 것일까?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것보다, 치밀한 감시가 오히려 몸과 마음을 더 강하게 구속해 절대적인 순종을 이끌어 낸다고 그는 말한다. 감시하며 당근을 약속하는 사탕발림이야말로 지독한 폭력이다.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감시는 사람들을 깊은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조용조용 타이르고, 감시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자유는 허구라서 더 잔인하다. 묘한 불쾌감, 자유롭지만 답답한 느낌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탄핵 당했고, 전전 대통령의 온갖 범죄행위는 검찰의 조사를 받으며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유력한 정치인과 예술가들이 '미투'로 생명을 잃었지만 세상엔 봄이 오는 듯하다. 언감생심 하루아침에 봄이 오지는 않을 터, 오랫동안 가꾸고 다듬어야 온전한 꽃이 피겠다. 그들이 들이댄 감시를 이젠 우리가 해야 한다. 신속한 효과를 내는 폭력이나 공개처형보다 오랫동안 가두고 감시하는 것이 더 큰 공포를 준다고 했다. 제대로 된 길을 만들 때까지 감시하고 폭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주문해둔 씨감자가 도착했다. 작년 봄엔 가뭄 때문에 텃밭에서 거둘 것이 없었다. 밭에 거름을 피고 농사를 준비하는 마음이 바쁘다. 초겨울에 심어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은 듯 했던 양파는 봄 햇살을 받아 연초록 생명의 빛을 올리기 시작했다. 게으른 농부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는 땅의 경고처럼 밤이면 개구리 노래가 한창이다. 부지런한 개구리들은 눈 부릅뜨고 훈풍으로 다가오실 봄을 맞으려 밤을 지킨다. 봄비를 맞은 매화가 답답한 외투를 벗고 꽃망울을 툭툭 틔우는 봄이다.

 
▲머위꽃이 봄을 열고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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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천의 ‘땅 다지기’(49)] 진안 봉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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