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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잔인한 4월

[홍순천의 ‘땅 다지기’(51)]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8년 04월 04일 18시)


(그림=홍순천)

산벚나무가 연분홍 꽃을 터뜨렸다. 물이 오른 잔디 위를 맨발로 거닐며 봄을 누렸다. 매화 향 그윽한 4월에는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좋은사람들과 막걸리 나눌 계략을 세워도 핀잔 듣지 않을만하다. 찬바람 이겨낸 작약이 막걸리에 취해 불콰한 새싹을 올리고 매화의 단물을 탐하는 벌들이 소란스럽다. 세상은 온통 잔치를 벌였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그리운 사람의 편지를 읽으며, 낯선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나가는 꿈을 꾼다.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4월이다.

감자를 땅에 넣고 싹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급하지만 똥 싸고 덮은 고양이 발자국만 텃밭에 선명하다. 4월은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움츠렸던 욕망이 불거져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짓밟는 터무니없는 시절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생을 마감하고 젊은이들이 도전하며 좌절하는 잔인한 계절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좋은 옷으로 갈아입어도 서글퍼지는 4월엔 표정을 감춰야 한다.

4.19엔 민중의 저항으로 독재를 몰아냈지만 5.16의 빌미를 만들어 오랫동안 더 심각한 독재에 시달렸다. 하지만 화로에 묻어 오래 보관한 그 불씨는 이 땅의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는 촛불로 살아났다. 세월이 침몰해 채 피어나기 전에 꽃잎이 된 젊은 영혼들의 통곡이 들린 것도 4월이었다. 아직도 노란 리본을 버리지 못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잔인한 4월, 꽃으로 피어난 봄날 서러운 상복을 입어야하는 역사가 너무 잔인하다.

가죽까지 벗기는 수탈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던 70년 전, 친일 친미세력이 권력을 잡고는 이념논쟁을 앞세워 국민을 겁박했다. 자기방어를 위한 가당치 않은 몸부림이었다. 허리에 칼을 차고 말안장에 기세 등등 올라앉은 순사 빼닮은 경찰이 말발굽으로 아이를 짓밟았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경찰을 향해 던진 항의가 총알로 돌아왔다. 3.1절 기념행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소속 350여 명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권력기반이 부도덕한 권력은 좌익토벌이라는 굴레를 씌워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7년간 이루어진 토벌에 따뜻한 남도 한라산 자락에 수 만 명이 쓰레기처럼 매립되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 장교가 권력을 탈취하고 그 추종세력이 나라를 말아먹던 오랜 세월동안, 4.3은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천년만년 허물을 감추고 싶었겠지만 진실은 땅에 묻혀 때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반드시 꽃을 피운다. 그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시절이겠다. 미국은 수탈당한 민족을 갈라놓고 당근으로 길들였다. 최근 민족화합을 모색하는 대통령에게 그들은 장사꾼의 치부책을 들이밀지만, 과거의 권력들은 치졸한 폭력을 들이댔다. 동네깡패의 더러운 주먹을 똥처럼 피해 다니던 시절이 민망하다 못해 부끄럽다. 모진 바람을 피해 산속에 들어온 회한이 깊다.

그러나 어쩌랴. 4월은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맨발로 잡초를 뽑아도 등에 내려앉는 햇살이 고마워 시린 눈을 찡그리는 봄이다. 조팝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고 산벚나무는 드디어 팝콘처럼 터졌다. 살구꽃 복사꽃이 차례를 기다리며 곱게 차려입은 자태를 대놓고 자랑하는 봄에는 눈물도 사치다. 눈물샘 폭발하는 잔인한 계절을 건너려면 참아야한다. 지랄 맞게 화사한 봄이 코앞에 있어도 즐겁지 않아 더 잔인하다.

수수꽃다리 연보라 향기를 기다리는 마당에 햇살이 가득하다. 몇 해 전 모셔온 산자고가 화사한 꽃을 피웠다. 시샘하는 꽃잔디가 꽃망울을 준비하는 4월은 속으로만 참던 눈물이 터져 나오는 계절이다. 어서 지나가야 마음이 편하겠다.

 
▲산벚꽃이 눈물처럼 터졌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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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감자 심을 때
[홍순천의 ‘땅 다지기’(50)] 진안 봉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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