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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봄이 온다

[홍순천의 ‘땅 다지기’(53)] 진안 봉곡마을

편집부 기자 (2018년 05월 02일 20시)


(그림=홍순천)

씨앗을 쏙쏙 올리는 잔디는 봄을 만끽하고 있다. 마당에는 꽃망울을 안은 작약이 한창 키를 키운다. 새벽부터 소쩍새 울고, 농부들은 솥단지에 곡식을 채우기 위해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밭을 간다. 무논에 써레질하는 기계소리 요란하니 이제 곧 모내기를 하겠다. 익숙하고 정다운 소리를 뒤로하고 보따리를 쌌다. 며칠간 병원신세를 져야 해서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겼다. 봄이 화사한 노래를 시작할 때 나는 수인(囚人)이 될 신세다. 팍팍한 심사를 다스리며 집안일을 단도리하는 손이 분주하다.

고향집에 편지를 쓰며 올 겨울이 따뜻하다고 고하는 이유는, 백발의 노부모가 자식을 걱정할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산그늘에 쌓인 눈이 한 길이어도 마음속에 품은 봄은 스스로를 따뜻하게 추스르는 힘의 근원이다. 봄을 시샘하는 눈처럼, 망가진 발목은 사사건건 시비 걸며 괴롭히는 가시였다. 인대가 끊어져 제어가 불가능한 왼발은 불같은 의지에 늘 찬물을 끼얹었다. 천천히 걷게 하고 불필요한 일을 털어내게 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방만치 않게 하는 손오공의 머리띠였다. 스승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발이 온전했다면 천방지축 안하무인으로 짓까부는 동동 초라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편한 왼발에 감사할 일이다.

왼손은 늘 게을러 보인다. 풀을 뽑는 것도 감자를 심는 것도, 양치질을 하는 것도 늘 오른손이다. 왼손은 그저 뽑은 풀을 받아들고 씨감자를 오른손에게 쥐어주거나 물 컵을 들고 기다릴 뿐이다. 때론 못질하는 오른손의 잔인한 망치에 피멍이 들지만 왼손은 그저 조연으로 보조만하면 그것으로 끝인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왼손, 왼발이 망가져 본 사람은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동료인지를 안다. 오른손 오른발이 일 할 수 있는 것은 왼손, 왼발이 있기 때문이다. 망가진 내 왼발은 스승노릇까지 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가시를 뽑기로 마음먹었다. 보따리를 싸며 머릿속이 분주하다.

한국전쟁 이후, 지긋지긋하게 색깔론을 우려먹던 보수 우익은 의도적으로 좌익을 폄훼하고 짓밟았다. 오른손 하나만으로 망치질을 할 수 있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자기최면에 근거한 일이다. 그 치졸하고 우매한 치부가 드러나 결국 왕좌에서 쫓겨나 영어의 몸이 된 권력자들이 생겼다. 상처 난 왼발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결과다. 상처를 다독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훨씬 향기롭고 원만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남북 정상이 최근 다시 만났다. 정전을 선언하고 영구적인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합의는 세계사에 남아 박수 받을 일이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봄이 오려나 보다. 씨앗을 뿌리는 일보다 가꾸는 것이 더 힘들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다친 발을 끌고 무식하게 살아온 세월이 의료장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수술 날짜를 잡고 봄 일을 서둘렀다. 왼발은 뒷덜미를 잡고 일을 방해하지만 여전한 스승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일머리를 다지며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세월에 녹은 인대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기로 했다. 부모가 주신 몸에 칼집을 내 이물질을 넣고 꿰맸다. 그들이 살아계셨다면 노심초사 걱정하는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 ‘올 봄은 따뜻하다’는 편지를 보냈겠지만, 작고하신 지 오래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수술 후 회복기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중이다. 평소엔 멀쩡해보여도 환자복만 갈아입으면 영락없이 환자다. 마음이 병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모두 왼발 덕이다.

눈 쌓인 산골에 봄이 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동방의 끝 작은 나라에도 봄이 오고 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인삼각(二人三脚), 다리에 끈을 묶고 발을 맞춰야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다. 70년 만에 찾아온 기회다. 왼발에게 물어보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봄은 온다.

 
▲상처를 말끔하게 씻고 고요해지기를....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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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봄 서리
[홍순천의 ‘땅 다지기’(52)] 진안 봉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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