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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은애의 ‘퀴어 이야기’(5)] 성소수자부모모임

편집부 기자 (2018년 10월 14일 21시)


(사진=정은애)

연일 가짜뉴스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가짜뉴스 팩트체크, 온상지라고 추정되는 단체 기도모임, 반박 기사와 만평, 법적 처벌 논란, EU(유럽연합)에서 제시하는 공론화 모델까지.
가짜뉴스는 전세계에서 지역, 온·오프라인,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산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규제 장치도 글로벌하고 다각적이다.
이제는 그 해악이 지나쳐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EU나 프랑스에서조차 규제 조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규제가 강해지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 나아가 민주주의의 퇴보까지 염려되는 마당이라 여전히 논란이 크다.
하지만 가짜 뉴스는 주로 소수자와 약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짜뉴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법을 통해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홍성수 숙명여대법학부 교수는 “모든 것을 섞어서 가짜는 다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혐오표현이 형사적으로 불법이 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난 달 9월 29일에는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는 축제장 입구를 막고 드러누운 것도 모자라 경찰의 보호 아래 행진을 준비 중인 트럭 밑에 스스로 달려 들어가 누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며 퀴어퍼레이드 차량이 사람을 치고 지나가 의식불명이며 그 차량 위에서 춤을 추었다는 기사를 버젓이 올렸다.
물론 그런 뉴스들은 현장을 찍은 동영상으로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실과 상관없이 처음 올린 뉴스만을 재생산하며 혐오의 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방치된다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선 9월 28일 인천에서는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몇 백 명의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겹겹이 둘러싼 몇 천 명의 혐오세력에 의해 10시간 가까이 화장실도 가지 못하였으며 참다못해 화장실 출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주먹에 맞고 떠밀리고 옷이 뜯기는 봉변을 당했다.
심지어는 시가지 500미터 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혐오세력들은 행진트럭에 2차례나 구멍을 내고 그걸 무릅쓰고 한밤중까지 기다리다가 겨우 행진하는 성소수자들을 향해 난입하여 깃발과 피켓을 부러뜨리기까지 하여 여러 사람이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들이 떼로 들고 있는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라는 손팻말조차 가부장제도의 잔재, 세상을 전부 남·녀 이분법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획일적인 생각을 보는 것 같아 물에 젖은 오래된 잡지를 보는 것 같이 남루했다.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강압적인지 그들은 알까?
혐오는 어떻게 미화해도 혐오이고 폭력은 어떻게 포장해도 폭력이다.
그들은 일부 종교와 기득권을 가진 자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폭력과 확성기와 거짓뉴스로 공격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합리적 이성과 연대에 기반한 올곧은 목소리로 대응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저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스러지거나 약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한 아버지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귀한 일부라고 말하였다.
소수자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양함을 이루는 귀한 존재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에는 다양한 성소수자, 난민, 약자가 있어왔다.
그들은 때로 특별한 존재(여신!)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외의 대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숫자와 상관이 없다.
여자의 숫자가 지구의 반 정도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무서워하지 않는 밤길을 무서워하는 것이 단지 여자들만 겁이 많아서인가.
남자들 또한 다르지 않다. 권력자에게 갑질을 당하는 많은 남자 을들은 물리적 힘이 약해서 혹은 숫자가 적어서 말 못하고 갑질을 당하겠는가.
소수성 또한 지능이 아주 높은 사람들을 지능소수자라고 소외시키지는 않는 걸 보면 소수라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주 적은 숫자의 양반 아이가 인구의 대부분인 평민 어른에게 하대하던 시절이 불과 100년 남짓이다.
권력을 가졌다고, 숫자가 많다고, 힘이 세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소수자고, 건강을 잃으면 건강약자가 되며 직업을 손에서 놓으면 경제적 약자가 된다.
그럴 때 숫자가 적으니까, 건강은 개인문제니까, 빈곤은 자기책임이니까 차별받고 함부로 막말을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만약 그들이 차별받는 위치에 놓인다면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명분을 버리고 극렬하게 행동할 것이다.
꼭 지금 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위해 억지 쓰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언제든 옳은 쪽보다는 이기는 쪽에 서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보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거나 소수자라고 해서 기피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논쟁하며 설득시키기는 어렵다.
그들이 주장하는 정상성은 한 가지뿐이어서 그 외에는 이미 차별과 혐오의 틀을 씌워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방법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제 차별과 혐오는 불법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지만 차별하는 사람에게 그게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란 걸 알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나아가 상식과 합리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 다른 사람들끼리 극단적으로 충돌하게 방치하지 않고 법이라는 품위 있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10월 20일 오후2시에 광화문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평등선언이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사법 격언이 있다.
평등에 나중은 없다.
차별금지법. 나중이 아니고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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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멋있는 엘라이로 산다는 것
[정은애의 ‘퀴어 이야기’(4)] 성소수자부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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