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별다방
[정은애의 ‘퀴어 이야기’(9)] 성소수자부모모임



(사진=정은애)

이상한 일이다.
분명 1월 1일이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지만 우리 정서는 달력 한 장이 끝날 즈음인 설날이 와야만 무언가 비로소 진정한 시작이라고 느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의미가 좀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설은 곧 명절이고 자영업자들에게는 대목장사를 기대하게 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정취는 또 외상값(미지급금)에 대한 책임감이 다른 때보다 더 커서 못주면 아주 미안해하고 지급을 요구할 때도 눈치 볼 것 없이 더 당당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에게 설에 관한 추억이라면 곧 가족·친척들과의 관계가 비중이 가장 크다.
짐작하다시피 어떤 성소수자는 가족들을 만나 가장 중요한 자신의 정체성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다녀와서 우울해하기도 하고 고민 끝에 아주 귀향을 포기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족·친지의 온전한 이해와 환대 덕분에 큰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는 때이다.
때에 따라서는 생각지 않은 일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내 부모님 경우처럼 손주가 이제 딸이 아니고 트랜스젠더 아들이라는 걸 아셨을 때 혹여나 그 때문에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시다가 이내 아들로 인정하신 건 고마운데,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이 있으셔서인지 세뱃돈을 딸들보다 더 많이 주셔서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 말이다.

명절엔 무엇보다도 가정이 화목을 더 다지는 때이다.
화목할수록 가족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 같이 의논하고 잘 해결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보통 자녀가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했을 때 대부분 부모님들의 반응은 충격과 아닐 거라고 믿는 부정, 본인의 잘못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는 단계 등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화목한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그 상황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찾고 알아가면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지지하게 된다.
어떤 성소수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부모님 사이가 안 좋으신데 내가 커밍아웃해서 두 분이 싸우다가 이혼할까봐 겁이 난다고.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화목한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혹시 작은 일로 소원하다가도 가정에 큰일이 생기면 합심하여 고민하고 가족 최대치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커밍아웃을 이유로 서로 비난하다가 헤어진다면 과연 그게 진짜 자식 때문일까?
오히려 부부사이 문제를 그동안 드러내지 못하다가 자식을 핑계로 헤어지는 것 아닐까.
만약 자식의 커밍아웃이 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렇게 엄청나게 큰 사안이라면 부부가 둘만의 싸움은 뒤로 미루고 자식의 일 때문에라도 마음을 같이해야 할 텐데 말이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고민은 살면서 겪는 큰 어려움 중의 하나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 혼인, 출산, 취업, 질병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 해결하는 방식이 비난과 부정인가?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면 어떻게 하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부터 먼저 생각할 것이다.
취업이 걱정이라면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내 자식만 취업 못하는 게 아닌 요즘 같은 불경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경제정책이나 지역발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혼인해서 출산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하지 내 자식이 결혼 안 하는 걸 비난하거나 출산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질병의 경우 해당 질환과 상관없는 병동에 강제로 입원시키고 쉽게 낫지 않는다고 자식을 때리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질병에 대해 연구해보고 체질이 원래 그렇다면 그에 맞추어 자식 몸을 챙겨줄 것이다.
그런데 자식의 성정체성을 핑계 삼아 이혼하거나 자식을 비난하고 나아가 괴로운 지경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한 부부, 화목한 가정일까?
설 명절에 즈음하여 가족의 정상성이 무엇인지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나는 해마다 명절에는 부모님을 찾아 뵌 후 근처 오래된 다방을 방문한다.
시내에 많은 스타벅스가 아니고 진짜로 전통적인 이름 ‘별 다방’이다.
다방이 개업한 지 50년 가까이 된지라 아직도 연탄난로로 난방도 하고 물도 데우며 커피 따라주는 포트는 찌그러져 있고 소파 한쪽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추 포대 자루가 지난 추석부터 자리 잡고 앉아 높았던 키를 줄여가고 있는 다방이다.
20년 전에 인수받아 아직도 영업을 하고 계시는 60대 중반의 사장님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내 아들이 트랜스젠더임을 말하자 사장님 첫 반응이 전라도 말로 “그런 아뜰(애들)이 다 잘 살더만”이었다. 어디서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보셨나고 하자 “TV에 많이 나와~, 그라고 그런 아뜰 중에 죄 짓고 나쁘다는 아뜰 하나 없어!!” 하시기에 나도 모르게 시쳇말로 빵 터졌다.
뜻밖의 이야기에 “그래도 종교인들 중에 극심하게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하자 “염×하던갑네, 날마다 TV 나오던디 그래서 거기**들은 그렇게 횡령하고 성폭행헌댜!!” 하셨다.
물론 사장님은 내 아들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냐고 하자 “다들 동네에 그런 친구 한두 명씩은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하셨다.
생각해보면 나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여자지만 남자처럼 하고 다니거나 그 반대의 경우,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 우정과는 분명히 다른 로맨틱함으로 동성친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다.
요즘처럼 몇 십 년을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눈인사가 고작이지 말 한번 섞지 않고 사는 여건과 달리 예전엔 동네사람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듣고 그 집에서 직접 못하는 자식자랑도 떠들어주고 때로는 남들한테 밝히고 싶지 않은 아픔도 가려주며 살던 세상이었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없던 게 아니고 모를 뿐이지, 성소수자는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던 것이다.
60대 중반,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별다방 사장님의 식견과 인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사람을 보는 사장님의 기본자세는 “무심한 듯 편견없음” 아닐까 싶다.
다방 문을 열고 나오며 적지 않은 인생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겪고 살아오신 사장님의 자연스러운 배웅 인사에 대목 장사 열기보다 더 큰 에너지를 느낀다.
“언제 아들 한번 델꼬 와~ 맛있는 커피 한잔 타줄께!”

( 편집부 기자    2019년 02월 16일 15시4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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