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교과서, 과거사 반성 삭제, 보상관점 서술
일교과서, 강제징용노동자, 위안부 강제연행으로 기록하고 있어



1965. 12. 18 한일청구권 협정은 국가간 보상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개인의 보상 청구권이 소멸되지는 않았다.

일본의 1993년 고노담화 이후 입장은 ‘개인보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이다. 최근 망언 제조기로 불리는 고노 다로 외무대신조차도 2018년에는 개인보상청구권이 남아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일본 정부와 아베는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에는 돈을 지급했고, 협정으로 한국 국민은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는 아베가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확대하여 일본의 내적갈등을 해소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흔한 표현으로 ‘국가간의 신뢰 훼손’을 거론하며 마치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일본 국민들에게 심어 놓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서는 일본 역사교과서가 서술된 시점별로 시각 차이를 보인다. 이를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

전주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공동연구원의 권혁선 대표가 일본의 실교출판사가 펴낸 ‘일본사B’라는 역사교과서를 1993년 검정 통과된 교과서와 2007년 검정 통과된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번역했다. 이 자료를 통해 한국관련 내용의 서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 이 교과서는 일본에서 보급률이 3위에 이른다.

1993년 검정통과된 교과서에는 ‘1939년 7월,「조선인노무자내지이주에 관한 건」(내무·후생차관통첩)에 의해「모집」형식으로 조선인의 연행이 시작되었고, 1942년 「관 알선」에 의해 명실 공히 강제연행이 개시되었다. 더 나아가 1944년 10월에 들어서자 국민징용령이 적용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의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약 70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강제 연행되어 광산·공장·공사현장애서 사역되었고, 또 다수의 여성이 종군위안부로 중국과 필리핀·인도네시아의 전선과 오키나와 등으로 연행되어 일본의 전쟁에 희생되었다'그리고 '종군위안부에게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식 기록이 확인되어, 새롭게 일본군의 비인도적인 행위가 명백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일본 및 일본인은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 서서, 조선·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고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시점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시장 점유율이 미비한 역사왜곡교과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본 역사교과서가 비중에는 차이가 있지만 강제징용자와 위안부에 대해 과거사 반성이라는 공통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가 2007년 검정통과된 교과서에는 ‘1939년 7월 이후, 「모집」형식으로 연행이 시작되었고, 1942년 3월부터는 「관알선」에 의한 명목으로 강제 연행이 개시되었다. 나아가 1944년 7월에는 국민징용령이 개정 공포되어 그 전면적 발동을 통해 일본의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이 일본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 수는 전체적으로 약 80만 명에 이르렀다. 타이완에서의 동원 인원은 9만 명에 달하였다. 1944년 이후 수천 명의 조선인 여성이 노동정신대로 일본 공장으로 보내어졌다. 또한, 다수 여성이 일본군병사의 성 상대로서「종군위안부」가 되어 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의 전선과 오키나와 등으로 연행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막대한 손해와 피해를 받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은 근년, 정부와 관계 기업에 대하여 가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전후 보상 문제) 이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의 전쟁 배상 문제에 대하여는 각국과의 조약으로 해결된 것으로 이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는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간 보상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개인의 보상 청구권이 소멸되는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1993년의 일본 검정역사교과서에는 ‘과거의 반성’이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2007년에 검정통과된 일본역사교과서에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개인의 보상 청구권이 소멸되는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다’고 서술하여 관점을 반성의 문제가 아닌 보상여부에 대한 관점으로 전환시켰다,

1993년의 일본 검정역사교과서의 내용처럼 2007년까지 일본인들은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와 피해자 보상에 대해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은 한국이 부당한 청구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이는 일본 경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2007년 이후 일본은 생산가능 인구가 줄면서 소비절벽시대를 맞았다. 일본의 내수경기는 살아날 줄 모르는 침체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생산가능 인구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비자발급 규제와 일본 내의 외국이주민 대한 배타적 정서도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에는 경제회생 정책들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어려워진 일본 내의 경기침체의 불만이 정부로 향하지 않고 외부로 표출될 수 있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다.

어려운 경기침체 속에 일본정부는 ‘보상이 끝났는데 또 약속을 어기고 한국이 보상을 또 요구한다’는 거짓 선동으로 자신들의 정부에 쏟아질 경기침체의 책임과 어려움에 대한 원망을 고스란히 한국에 대한 혐한감정으로 대체시켜 나갔다.

이처럼 일본 국내 여건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게 2007년 검정통과된 교과서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언급자체가 실종되고 단지 보상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서 일본인들의 정서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 역사교과서에도 인정하고 있는 강제징용노동자와 위안부에 대한 '강제 연행'에 대해 한국 내의 일부 정치권과 보수세력들이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처럼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일본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내용은 해당 역사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잘 이해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일관계에서 과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일본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과거에 대해서 충분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 임창현 기자    2019년 09월 03일 00시5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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