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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년07월13일18시46분

“임신중지 비범죄화하라” 현장활동가 한목소리

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 전북 여성·인권활동가 집담회...건강권, 재생산권 보장 촉구


  (  문수현   2020년 0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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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서노송동 ‘성평등전주’ 커뮤니티홀. ‘낙태죄 폐지와 그 이후’를 주제로 집담회가 열렸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지난해 판결 당시 헌법재판소는 정부와 국회에게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안적인 법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었다. 하지만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들의 삶도 변하지 않았다. 임신중지[낙태]에는 ‘죄’와 ‘불법’의 낙인이 아직도 선명하며,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해야 하는 여성들은 잘못된 정보와 불법광고에 매달리고 있다.

전북의 여성·인권단체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을 맞아 13일 성평등전주 커뮤니티홀에서 집담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이들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와 재생산에 대한 권리 보장을 거듭 촉구했다.

집단회를 주최·주관한 언니들의병원놀이 기획자 박슬기(산부인과 의사)씨는 첫 발제 「임신중지는 의료행위다: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통해, 무엇보다 시급히 보장되어야 할 것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훈련받은 의료인에게서 합법적이고 정확하게 시술된다면 인공유산은 내시경이나 치과치료보다도 더 안전한 시술”이라며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만큼, 식약처는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유산유도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을 하루속히 승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페프리스톤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미국 FDA도 2016년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대표적 상품인 ‘미프진’을 승인했다.

박슬기 씨는 같은 맥락에서 “어떠한 임신중지도 ‘불법’으로 구분돼서는 안 된다. 모든 임신중지는 의료행위로서,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보장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한 성관계와 피임, 임신과 출산에 대해 모든 여성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최장미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활동가는 “성산업 공간에서 성매매로 인한 임신 피해는 심각한데, 정작 현장지원단체는 법적으로 중절지원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고발했다.

정부 지침은 그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가족부 ‘2020 여성·아동권익증진사업 운영지침’은 지원범위를 ‘성매매로 인하여 임신한 성매매피해자등의 검사 및 출산 등 임신과 관련한 비용’으로 명시해 임신중단에 대한 지원은 누락하고 있다.

최장미 활동가는 “그동안 여성들은 낙태죄 때문에 불법 수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수술과정의 위험이나 수술 뒤 부작용도 여성 혼자 떠안도록 구조화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상황에서 성매매로 인해 임신한 여성들이 본인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낙태를 비범죄화 해야 하는 것처럼, 성매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성매매는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권지현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피해자조차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고발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적어도 성폭력(강간, 준강간) 피해자는 합법적으로 24주 이내라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병원 문턱은 높다. 고소를 하지 않으면 시술할 수 없다고 선을 긋거나, 20주가 지나면 수술할 수 없다는 자체 방침을 내세우기도 한다.


▲왼쪽부터 송경숙, 박슬기, 최장미, 권지현, 민경아 여성·인권활동가

한편 권 소장은 “성폭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임신중절수술을 허락받을 수 있는 잔인한 구조와 절차는 낙태죄가 폐지된 지금도 건재하다”면서 “폭행, 협박 등 물리력이 있어야 성립하는 현행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기에 부족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적인 행위(간음·추행)을 하는 것을 처벌하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경아 전주여성의전화 활동가는 「낙태죄가 유지시키고 있는 친밀한 관계 안의 폭력」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낙태죄는 그동안 친밀한 관계 안의 폭력을 유지,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왔다”고 했다.

헤어지고자 하는 여성을 낙태죄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주변에 낙태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경우 등이다.

민경아 활동가는 “나아가 낙태죄는 그 자체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자 하는 폭력”이라며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는 과정, 가장 쉽게 여성이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을 범죄화하는 것 등이 닮은꼴”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발제에 이어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넘어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논의’라는 제목으로 토론이 이어졌다.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이 좌장을 맡았다.

먼저 한상구 전주퀴어문화축제 활동가는 “낙태죄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성소수자의 재생산권 또는 성적권리는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돼왔다”며 “지금부터라도 논의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리모는 여성착취의 구조 속에 놓인 것이며 절대 있어선 안 되는 것인데, 미국 뉴욕 주는 대리모 합법화를 위해 성소수자를 (부당하게) 이용하기도 했다”는 말로, 한국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를 더 미뤄두지 말자고 제안했다.

청소년 활동가도 토론에 나섰다. 정다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전북추진모임 활동가는 청소년의 안전이 주위의 선의에 달려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비청소년[어른]의 보호를 통해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고, 그런 방식은 도리어 가족 안팎에서 청소년을 더 위함하게 한다”면서 “경제적, 법적 의존상태라는 고리를 끊어내야 청소년의 재생산권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집담회에는 전북여성노동자회,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민주노총전북본부, 아시아이주여성쉼터, 정의당전북도당 성소수자위원회(준)도 참여했다.

사법부의 결정이 1년 넘게 흘렀건만 정부와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애초에 낙태죄 문제는 헌법재판소(사법부)로 가기 전에 마땅히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책임있게 다뤘어야 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최근 반년에 걸친 공개적인 의견 수렴과 의회에서의 치열한 토론 끝에 임신중지 보장법을 통과시킨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성폭력피해자,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여성을 비롯한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국회가 대안 법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우리 모두를 대신해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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