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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o leave

[워킹홀리데이 멜버른⑩-최종] 김수빈(‘완생’을 꿈꾸는 20대 청년)

편집부 기자 (2015년 04월 01일 09시)


※ 2014년 11월, 26년 동안 살았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호주에서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전북교육신문의 제안으로 내 마음 속 나만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글쓴이 김수빈=사진).

여러 가지 타입의 결실을 맺은 워홀러들이 있을 테지만, 아마도 나의 이런 경우는 흔하게 이야기되는 ‘알찬 워킹홀리데이 보내기‘ 타입 중 하나는 아닐 것이다.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여행해보자는 목표도 아니었고,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보자는 것도,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보자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1년 동안 외국에서 외국인처럼 살아보는 것, 그 지극히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삶을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결국엔 1년을 호주의 멜버른에서만 그것도 한 집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되었다.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다. 2개월이나 길면 3개월 정도 머물 생각으로 들어갔던 Debbie의 집은 홈스테이라는 특성상 높은 가격이 부담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워홀러들이 묵는 쉐어하우스와 비교하면 두 배에 버금가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항상 따뜻한 말과 진심어린 격려로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Debbie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그 집에 머무는 멋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귀한 시간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장에서나 영어클래스에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길 나눠보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역을 옮기면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듯이 1년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저축해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만큼 멋진 가족들과 친구들을 가진 친구들은 없을 거란 기분 좋은 자부심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사실 원하는 일을 구하지 못해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보일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용기 내어 시도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정말로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줬던 Debbie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러 기회들을 제쳐두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많은 돈을 벌어 모으지도 못했고 호주 여러 곳을 여행해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집처럼 느껴지는 Debbie네 집과 이제는 정말 가족 같은 친구들 그리고 7개월을 넘게 일하며 정이 든 카페 ’Bella sistas'와 직원들이 나를 더 뭔가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이 아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고, 이제는 내 손바닥처럼 훤한 멜버른의 사계절 풍경과 모습들이 나를 더 주인처럼 반겨주는 듯했다.

영어에 이런 익숙한 표현이 있다. "Time flies when you're having fun." 즐거울 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동안 함께 머물렀던 많은 친구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면 Debbie와 우리는 저녁식사자리에서 식사를 겸한 송별회를 가졌다. 그리고 2014년 9월, James가 1년 동안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가족들과 마지막 저녁식사 겸 송별회를 갖기 직전까지도 나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두 달 후면 나도 저렇게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겠구나... 그때부터 달력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고 남은 두 달의 시간이 너무도 모자라게만 느껴지면서 지금까지의 순간들을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서면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 한마디도 자신 있게 건네지 못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 정도는 거뜬히 해낼 만큼의 영어 실력을 갖췄다. 그리고 멜버른 밖을 크게 벗어나 본 적은 없었지만 쉬는 날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다니고, 짜인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멜버른 곳곳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즐긴 시간들은 아마 여행객으로서도 하기 힘들었을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1년 동안 얼마나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냈다 하더라도 떠나는 순간이 다가올 때는 만족감보다는 아쉬움과 미련이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인 듯하다. 특히나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 아쉬움과 무거운 마음이 더했다. 그리고 왜 내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호주에서 만나 웃음을 나누고 정을 쌓았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함께 지내는 가족들과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지만, 떠나기 전 2주간 여자친구와의 호주 여행을 위한 계획 때문에 나머지 친구들과는 3~4주 먼저 약속을 잡았다. 잉글리쉬 클래스에서 만난 학생들, 그곳에서 내 선생님이 돼 주었던 Ruth와 Nigel, 그리고 이전 일자리에서 만난 Jundi와 이제는 좀 더 통학이 편리한 곳으로 이사해 지내는 내 첫 하우스메이트들 Jessica, Jellico, Andy, 그리고 Carollina를 차례로 만나며 우리의 사진들을 출력해 장식한 엽서에 손편지로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계획이 무엇인지, 다시 호주에 올 생각은 없는지 묻는 친구들의 아쉬움 섞인 질문과 인사는 다시금 나를 한 번씩 고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여자친구의 호주 방문과 여행, 반가움과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떠나는 아쉬움을 잠시나마 뒤로 숨겨두고 시드니와 골드코스트를 돌아 다시 돌아온 멜버른, 이제 호주에서 남은 날은 단 5일, 이틀을 여자친구와 멜버른 시티를 둘러보고, 그레이트오션로드로 당일 투어를 다녀왔다. 그리고 마침내, 호주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저히 작별인사를 할 엄두가 날 것 같지 않아 인사를 미루고 미뤄왔던 나의 직장 ‘Bella sistas‘의 주인 Pino와 직원들에게, 그리고 1년을 함께한 Debbie네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2014년 11월 15일, 호주를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여자친구와 함께 'Bella sistas' 를 방문했다. 언제나처럼 해맑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준 Pino는 여행은 즐거웠는지, 자기가 말한 곳은 가보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역시 Pino의 넘치는 에너지와 행복한 기운 때문인지 이제 곧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야만 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간단히 브런치를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기념촬영 또한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문밖을 나서려던 찰나에 Pino가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던 일을 마치고 내게 다가온 Pino는 뜨거운 포옹으로 나를 안아주었고, 어느새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는 예상 못한 그의 눈물에 잠깐 놀랐지만 이내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Pino는 마지막으로 내게 잘 지내고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떠나는 내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찾아왔다. 비행기 시간이 늦은 밤이라 다행히 저녁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갖고 공항으로 떠나기로 했다. 잘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가족들 대부분이 학기말 시험기간 중이어서 저녁식사 전까지 이별에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나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마친 후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는 노크소리에 여자친구와 가벼운 마음으로 방을 내려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우리는 즐겁고 화기애애한 식사를 가졌다. 식사가 끝나고 Debbie가 시작으로 작별인사를 건네며 준비한 선물들을 꺼내 놓았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때의 멜버른이었지만 벌써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한국을 생각해 준비한 빵모자와 호주와 멜버른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기념품들 그리고 티셔츠까지 정말 세심한 배려와 진심이 묻어나는 선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울음바다로 만든 노트 한 권, 바로 친구들이 서로 날 위해 만들어 준 각자의 사진과 메시지들을 담은 포토북이었다. 정말 예기치 못한 준비에 놀라면서 한 장 한 장 그 자리에서 펼쳐 읽어 보았다. 그 안에는 처음 내가 Debbie의 집에 온 순간들부터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그리고 심지어 이틀 전 나와 여자친구의 모습까지 프린트되어 담겨있었고, 한 명 한 명씩 작성한 진심 담긴 메시지와 인사들이 적혀 있었다.

 
(사진=작별 선물로 건네받은 포토북. 엄지손가락 마디 두께의 노트 한 권이 이렇게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메시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영원히 잊지 못할 큰 선물이다.)

나는 하나하나 보고 읽어가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앞날을 두고 해야만 하는 이 고통스러운 작별의 순간을 끝내 안녕이라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뜨거운 포옹으로 대신했다. 수십 번을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탓에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참고 전하고 싶었던 말을 다 전할 수 있었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서야 아쉬움과 서운함에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순히 이별의 순간이라기보다는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아마도 감당해야 할, 호주에서의 삶과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한 순간의 꿈처럼 내 안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더 마음 아프게 했지만, 내 삶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었던 모험이자 행복하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떤 만큼 내 안에 새로운 싹이 되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보길 바란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 이번 회를 끝으로 [워킹홀리데이 멜버른]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애독해준 독자 여러분과 매주 정성스런 원고를 보내준 글쓴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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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요란한 출발
[워킹홀리데이 멜버른①] 김수빈 / ‘완생’을 꿈꾸는 20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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