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8년02월20일13시51분( Tuesday )



[ 설연화 ]
체험으로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0)] 설연화 / 시인·수필가


편집부 기자 (2015년 07월 27일 11시16분42초)


아이들에게 체험은 삶의 밑바탕이 되고, 생각의 너비를 넓혀주는 계기가 된다. 특히 농촌 체험은 일상의 소중함과 우리가 먹고 있는 것들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비로소 얻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그러나 하루 몇 시간 노는 체험이 아닌 실제 아이들이 노동해야 한다면 경험을 넘어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닐 수 있는 것 같다.

시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이들의 외갓집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을 데리고 농촌 체험을 일부러 시키지만, 우리 아이들은 체험이 아닌 노동을 했다. 아이들과 친정에 가는 날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설날, 추석날, 어머니 생신, 아버지 생신, 여름휴가, 그리고 아이들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었다. 지금은 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시고 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많기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어머니의 부름이 있으면 수시로 내려간다.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난 봄 주말에 동생과 고추를 심기 위해 내려갔지만, 아버지께서 이미 일을 마친 뒤였다.
“엄마 생신 때 내려와서 기열이랑 둘이 하면 된다고 했는데, 다 해 놓으셨어요?”
“인자 논도 다 팔아 불고 뭣 허것냐? 할 일도 없는디 고추나 심고 있어야제!”
“그래도 그렇죠. 다리도 불편하고 허리도 안 좋으신 분이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고추 심기가 어디 쉬워요?”
“괜찮해야! 이런 일도 없으믄 심심혀서 어디 살긋냐? 그래도 요 쪼깐한 밭뙈기라도 있응께 소일거리 삼어서 할만 허다!”
“아니, 그런데 올해도 고추를 너무 많이 심으신 것 아니에요? 어머니는 일 못 하실 테니 아버지 혼자 올여름에 고추 다 따셔야 하는데? 그렇다고 제가 여름 내내 여기서 고추 따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긍께잉! 옛날에 아그들 학교 댕길 때는 방학이라서 놀러 와가꼬 아침에는 고추 따고, 낮에는 냇가 가서 멱감고 혔는디. 인자 아그들도 다 커 부렀응께 와서 고추 따줄 놈이 없다잉! 그래도 그때는 아그들이 바글바글 좋았는디. 고추 따줘서 좋응 것도 있는디, 두 노인네만 있다가 아그들 오면 사람 사는 집 같응께 좋드라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랬었다. 방학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세 오빠의 아들딸, 우리 아이들이 모두 친정집에 모였다. 아버지는 손자, 손녀가 열 명이었다. 그중에 제일 큰 손녀와 둘째네 두 손녀만 빼고 일곱 명이 여름방학 내내 친정집에서 살았다. 난 셋째 오빠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간 후 이틀 정도는 친정에서 자고 군산으로 올라왔다.
친정어머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 도착한 아이들을 모두 은행나무 그늘에 앉혔다. 나이가 모두 또래였다. 그중 큰오빠네 둘째 딸이 대장이었다. 열여섯 살, 그 아래 열세 살이 세 명, 열두 살이 한 명, 열한 살이 두 명, 가장 호기심 강하고 사고뭉치 사내아이들이 다섯이었다. 큰오빠네 둘째 딸과 자영이만 손녀였고, 모두 손자였다. 어머니는 떠들고 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름방학이어서 놀러 왔는디, 할매를 쪼감 도와 줘야 쓰것어! 아침에 여섯 시믄 일어나서 밥 묵기 전에 고추를 따야헝께 밤에 늦게 자들 말어.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거 아녀? 글고 저녁에 또 따야 되니께! 해가 저물 때는 쪼감 시원헝께 그때 또 고추 딸 것이여! 글고 밤에는 낮에 할아부지가 따 놓은 버섯을 손 봐야혀! 다듬어서 상자에 넣어야 항께 쪼감 바뻐. 글고 남은 시간에는 느그들 놀아도 되는디 넘의 밭에 가서 지앙(장난이나 사고)치믄 안 된다잉! 요즘에는 아그들이라고 안 봐중께 경찰서 순사한티 잡혀가기 싫으믄 넘에 밭에는 가들 말어! 글고 냇가에 비암 있응께 항상 조심허고잉! 글고 묵고 자픈 거시 있으믄 며칠 전에 말해야 됭께 미리 말허고. 여그는 슈퍼마켓도 면사무소 근처까지 가야 있응께 알았지야?”
“할머니, 그럼 우리는 언제 놀아요?”
“낮에 놀믄 되제!”
“고추는 얼마나 따야 해요?”
“빨간 것은 다 따야 헝께 아침에 몇 도랑 따고 저녁에 남은 도랑 따야 혀!”
“할머니, 지금 우리 놀아도 돼요? 냇가 가서 놀고 싶어요!”
“점심도 안 묵고야? 점심 준비해 놨는디?”
아이들은 마당에 있는 수도에 손을 씻더니 재빠르게 부엌방으로 들어왔다. 조잘거리는 소리가 시장이 따로 없었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아버지께서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어따매 사람 사는 집 가트다잉! 느그들 클 때도 그랬는디, 시방은 두 노인네 숨소리도 안 들린다. 늙응께 숨소리도 션찮해진다잉!”
아버지께서는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표현하셨다. 아버지의 입가에 떠나지 않는 미소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언제까지 여름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재빠르게 먹더니 약속처럼 모두 냇가로 몰려갔다. 친정 집은 마을 입구에 있었다. 오래전에 들어선 장어 양식장 옆으로 난 조그만 길로 올라가면 바로 냇가였다. 내 유년시절의 냇가는 참 맑았다. 다슬기는 물론이고 민물 새우, 징거미, 가재, 우렁이, 무지갯빛 무늬를 가지고 있는 피라미, 은어 등 지금은 귀하디귀한 민물고기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방학이면 놀았던 그때는 이미 많이 오염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민물 새우나 가재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 났다.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기 위해 냇가로 갔을 때 일곱 명의 아이들은 모두 옷이 젖은 상태로 어디서 주웠는지 깨진 바구니를 들고 피라미를 잡고 있었다.
“야 거기서 발로 물에 있는 풀을 밟아 그래야 숨어있던 고기가 나오지.”
“형, 고기 간다. 얼른 바구니로 건져! 잡았어?”
“에이 도망갔다. 다시 처음부터!”
아이들은 뜨거운 햇볕에도 지치지 않은 모양이다. 삼십여 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덥고 뜨거워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내 발걸음은 집 옆에 있는 버섯 하우스로 향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뜨거운 날 버섯 하우스에서 느타리버섯을 채취 중이셨다.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네 동이나 되었다. 하루 수확량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두 분은 바구니를 들고 층층이 올라다니며 버섯을 바구니에 담았다. 옆에 멍하게 서 있을 수만은 없어서 바구니를 작업하는 하우스로 옮기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내가 모처럼 하는 일이기에 육체가 따라주지 않았다.
“나르기도 힘드네요!”
“젊은 너도 힘든디 나는 어쩌것냐. 이날 평생을 이놈의 일에서 벗어나질 못허고 산다. 시방!”
어머니의 말씀은 언제나 비슷했다. 그럴 때 잠시 다정한 말씀을 기대했던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어머니다우셨다. 냇가에서 놀고 있을 줄 알았던 아이들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두 옷을 갈아입고 버섯 하우스로 몰려왔다. 바구니 하나씩 들고 나르기 시작하니 수북이 쌓여있던 바구니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두 분 옆에서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느그들 다 놀았냐?”
“물에 뱀이 떠다녀요. 그것도 세 마리나. 무서워서 와 버렸어요.”
“색깔이 어쩌디야?”
“약간 회색? 맞나?”
“그거는 물 비암이다. 물어도 독이 없응께 괜찮해야. 그래도 비암은 조심해라잉 요즘에는 독사들도 자주 보이드라. 독사한티 물리믄 큰일 낭께 언능 와부러. 오늘맹키로!”
아이들은 지루했던 모양이다. 몇 차례 두 분 곁에서 바구니를 들고 서 있더니 어느새 우르르 몰려나갔다. 버섯 따는 작업은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모두 따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로 자란 것만 딸 수 있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느타리버섯이 가장 값어치가 있는 상품이라 했다.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버섯을 따는 것이 중요했다.

 
(그림=임솔빈)

해가 뉘엿뉘엿 지악보(물을 막아놓은 보의 명칭)를 향해 기울어갈 때, 아이들은 모두 비닐포대 하나씩 들고 고추밭에 섰다. 따야 할 고추와 따서는 안 되는 고추, 그리고 따는 방법 등을 설명해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점잖은 서당 선생님이 연상되었다. 내가 딸아이 나이 정도 되었을 때, 집으로 오셔서 오빠들 서예를 가르치던 그분을 기억해냈다. 아버지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고랑으로 들어가 양쪽 두렁의 고추를 땄다. 자신이 서 있는 반대편의 고추는 따기 힘들다. 그래서 서 있는 고랑의 양쪽에서 보이는 고추를 따는 것이었다.
“할머니 이거 끝에는 갈색인데 따도 돼요?”
“아녀, 그렁거는 따믄 안 되고 끝에까지 빨강 거를 따야 한당께!”
뜨거운 해는 피한다고 저녁 무렵에 따고 있지만, 종일 햇볕에 달궈진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아이들과 같이 고추를 따고 있었다. 땅에서 올라온 열기는 낮에 머리에 내리쬐는 뙤약볕과 또 다른 뜨거움이었다. 습하다. 몇 발짝 나가지 못했는데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아이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연신 얼굴의 땀을 훔쳐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그 모자가 더 덥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다시 일어나 고추를 따고 누군가는 집으로 뛰어들어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왔다. 습한 열기가 갈증을 부르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시더니 잠시 후 아버지의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난히 땀이 많은 나와 아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빗물이었다. 땀이 아닌 비를 얼굴에 쏟아 부은 것처럼 둘은 땀을 닦을 필요도 없었다. 줄줄 흘러내렸다. 다만 눈으로 들어가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힘들다는 듯 주저앉으며 혀를 내밀었다.
“힘들지? 그만할래?”
“아니, 해야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매일 이렇게 하실 거잖아. 나도 할 수 있어. 우리가 안 하면 엄마가 해야 하잖아. 할 거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어린 아들이 고마웠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생을 말하는 아들이 고마웠다.

잠시 후,
트럭을 타고 나가셨던 아버지께서 손에 검은 봉투를 들고 고추밭으로 오셨다. 그리고 소리치셨다.
“아이마다 더운디 하드 항개씩 묵고 해라잉!”
“와~! 아이스크림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고추밭 밖으로 몰려나갔다. 그때야 처음 허리를 펴신 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밝게 웃고 계셨다. 아이들은 모자를 벗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맛있어?”
“고모도 하나 드세요. 꿀맛이여!”
“우리 엄마, 아이스크림 안 먹잖아. 달아서….”
“난 그냥 들어가서 시원한 커피나 한 잔 마실게.”
그때였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실아, 너는 나올 것 없이 저녁 준비나 해라잉. 오늘 저녁에는 국시나 삶어 묵자. 아그들이 비빔국수 겁나 좋아하드라. 오이 좀 썰고 당근은 냉장고에 있시야. 그것좀 썰고 해서 국시 준비해놔야. 일 끝날 때쯤에 아그들 보낼 것잉께. 그때 국시는 삶으믄 되고, 아그들 많응께 국시 많이 삶어야 된다잉.”
“아버지께서 국수로 저녁 괜찮으시겠어요?”
“느그 아부지가 아그들보다 더 좋아헌다. 국시는!”
그 후텁지근한 고추밭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했다. 같이 해서 빨리 끝냈으면 좋겠지만, 점점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아이들이 힘들다며 방에 눕기 시작하자 어머니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누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인자 밥 묵었응께 버섯 작업해야 되는디? 언능 가자잉. 동네 사람들 벌써 와 있것다.”
아이들 부대를 이끌고 버섯 작업을 하러 하우스에 갔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벌써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버섯 하우스를 하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품삯을 바라고 일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바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녁 먹고 심심하니 마실 나와서 이야기도 주고받고, 돌아갈 때는 반찬거리로 상품이 되지 못하는 버섯 조금 들고 가시는 것이 전부였다.
여자아이들이 쪽 가위를 들고 버섯을 다듬어 한쪽에 놓아두면 난 내 작업을 하면서 상품의 차이에 따라 종이 상자에 넣거나, 봉투에 넣었다. 어머니께서는 저울질하셨고, 남자아이들은 종이 상자에 든 것과 비닐봉지에 든 것을 구분해서 커다란 냉장실로 운반하는 할아버지의 작업을 도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작업은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손 빠른 움직임에 금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쁜 아가씨들은 어째 고추 따는 거시 더 나서 아니믄 버섯 작업하는 거시 더 나서?”
아이들은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아, 낮에 고추 따는 일이 하기 더 좋은지, 아니면 버섯 작업하는 것이 더 좋은지 묻고 계시는 거야!”
아이들은 그때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버섯 작업이요! 고추 따는 것은 너무 더워요!”
어르신들은 깔깔 웃으며 여자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따, 이 집 딸내미네 딸내미는 말을 겁나 잘 허네잉. 엄마 닮었는갑서. 워따 말도 잘 허고 일도 잘 허고 농촌으로 시집가도 되긋네!”
“저는 말 잘하지는 못하는데요? 딸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말 잘하는 것은 맞지만….”
“말은 많이 안 해도 말은 재미있게 잘 허잖여! 일도 잘 허고 우리 동네 전설이랑께. 이 집 딸래미! 어이 딸내미네 딸 그거 알어? 느그 엄니가 너보다 더 어렸을 때잉 못밥을 해가고 나왔는디!”
“엄마 못밥이 뭐야?”
“아, 벼 심을 때 점심을 해서 논으로 가져가는 것을 못밥이라고 해!”
“그렇구나. 할머니 그런데요? 엄마가 밥 가져와서 어떻게 됐어요?”
“아 긍께. 열 살 조금 넘었으꺼시여. 새로 반찬도 허고, 국도 끓이고, 어따 거기다가 머리에 이고 양손에는 물 주전자, 술 주전자 들고 오는디 야무지게 해가꼬 오드랑께. 시방 생각해 보믄 겁나 애기였는디.”
“진짜요? 엄마 열 살 때 밥했어?”
“할머니한테 물어봐.”
“느그 어매? 아홉 살 때든가? 그때부터 밥했는갑다.”
“정말요?”
“우리 때는 다 그랬어. 더군다나 엄마는 딸 하나잖아. 할머니 밖에서 늦게까지 일하시고, 학교 갔다 오면 밥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수다가 깊어가는 만큼 밤도 깊어갔다. 일이 끝나자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밤 11시가 넘었다. 아이들은 첫날이라 피곤한 것인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리 아그들은 착하긴 해야. 일도 잘 허고. 아무리 할매가 일 허라고 헌다고 착실히 앉어서 일허는 놈들이 몇이나 되것냐?”
“그렇죠.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인데요.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일할 때, 이렇게 힘겹게 하루종일 일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힘에 부치는 일도 참으며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아그들 힘들어하는 거 봉께 아그들 못할 일 시킨갑다 했는디. 괜찮을랑가 모르것다.”
“아이들 괜찮을 거에요. 재미있어하잖아요!”
“그라믄 다행이고.”

고추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늦게까지 자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군산으로 올라왔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을 데리러 남편이 다녀왔다. 남편과 들어온 아이들은 새까맣게 그을려 시골 아이들 모습이었다. 건강하게 보였다.
“아픈 데 없었고? 엄마는 안 보고 싶었어?”
“엄마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맛있는 것 많이 해주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할머니가 일했으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방학 때 고생했다고 모두 똑같이 5만 원씩 용돈 주셨어요!”
“아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그때 시골에서 함께 했던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큰오빠네 둘째 딸은 엄마가 되었다. 버거운 취업난을 뚫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아이들에게 가끔 묻는다.
“일 힘들지 않아? 할만 해?”
“엄마, 그 숨이 턱턱 막히는 고추밭에서 몇 시간 동안 고추 따면서 눈물인지 땀인지 모르고 일한 적도 있는데, 지금 일은 힘들다고 할 수 없지. 물론 칭찬보다 혼나는 것이 더 많은 직장 생활이니까 힘들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 때는 시골에서 일했던 것 가끔 생각해. 졸면서 버섯 다듬다가 손도 다치고 그랬었잖아. 그때 생각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팔순이 넘으셨어도 그 힘든 일 다 하시는데, 우린 젊잖아. 아직!”

어렸을 때 며칠 되지 않은 경험으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중학생이 될 때까지 매년 고추를 따고, 마늘을 심고, 벼 말린 것을 포대에 담고, 버섯을 다듬는 일을 했다. 그런 경험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힘겨움과 존경하는 마음을 얻었고, 인내를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놀이 삼아 하는 체험보다 더 값진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인생 체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트위터로 보내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피임은 꼭 해야 해!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1)] 설연화 / 시인·수필가


   

+ 최신뉴스

수정 초등인사, 교사들 반발만 불러
전북교육청 인사, 전보서열순위 무시...해당교사들 “꼼수로 덮으려는가”


서거석 “학교폭력 교육계 시각 제고 필요”
가칭 ‘학생안전과’ 신설 위한 조직 개편 필요 강조


전북교육청 ‘일반직 해외연수’ 추진
“글로벌 마인드 위해”...지정과제 2팀, 자율과제 10팀 등 84명


황호진 “학생인권교육센터 ‘학생’ 삭제 안돼”..서거석 비판
“학생인권 후퇴 우편향...센터 성과주의가 더 문제” 주장


서거석 “교권 존중 분위기 조성해야”
“학생인권센터, 교육인권센터로 바꾸자..교권과 조화” 주장

 





회사소개 | 개인정보관리지침 | 청소년 보호정책 | 저작권 안내 | 광고안내 | 고충처리
 

제호: 전북교육신문 |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66 | 등록일자: 2013.11.6 | 발행인: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 임기옥

편집인: 문수현 | 종별:인터넷신문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380 (금암동)

 

전화: 070-7434-4800 | 팩스: 063-900-3789 | 메일수신: jbenkr@gmail.com | * 전북교육신문은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에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