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8년05월21일14시49분( Monday )



[ 설연화 ]
우리 집 가훈은 스스로 하기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4)] 설연화 / 시인·수필가


편집부 기자 (2015년 08월 24일 09시19분18초)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없다.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집안도 아니고, 그렇다고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한 집안도 아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다.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날부터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20개월 차이가 나는 두 아이. 큰 아이를 등에 업고 갓난이 기저귀 빨래하다 보니 무리했던 모양이다. 하혈을 시작했다. 겁이 덜컥 났다.
혹시 만약에 내가 잘못된다면 아이들은 어떡할까. 험한 세상에서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만약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어느 날 나의 부재를 아이들이 경험하더라도 자기 일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립심만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었다.

아이들이 자박자박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아이들이 신발을 스스로 신고, 양말을 신고, 옷을 고르고…. 내가 해 주면 2분도 걸리지 않은 일들이 아이들 스스로 할 때는 최소 20분에서 30분 이상 걸린다.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답답할 때가 더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잔인하게 내가 어느 날 사라지고 없는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상상했다.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는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너희 엄마는 계모여! 아이고 저 어린 것이 머리를 혼자 어떻게 감을 수 있겠어!”
시누이 말씀이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손위 시누이가 집에 왔을 때, 머리를 감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한 말씀이었다. 그때 딸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니에요. 잘해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답답하겠네. 차라리 머리 감겨주고 말지!”
“아이들 스스로 해 버릇해야죠.”
“어릴 때부터 안 시켜도 크면 혼자 다 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또한 어머니께 따로 머리를 감는 것을 배운다거나 신발을 신는 것을 배운 적은 없지만 스스로 하고 있다. 언제부터 혼자 머리를 감았는지 기억에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꿀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머리를 다 감은 다섯 살배기 딸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집 가훈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하자예요. 그래서 제가 머리 감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아이고 우리 예쁜 자영이가 그랬어? 자영이 다 컸네?”
딸아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했던 모양이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할 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TV에서 대학생들의 과제물을 부모가 대신해주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기사가 몇 차례 들렸다. 과잉보호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이 숙제마저 부모에게 의지하고 대학을 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부모들이 대신 찾아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첫 아이를 학교에 보냈던 터라 아이 숙제를 같이 했었다. 학교에서 만들기 숙제가 있으면 같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 뉴스를 보고 난 후 아이의 숙제를 같이 할 수 없었다. 12년 뒤 딸아이와 내 모습을 상상했다. 아이의 숙제를 대신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했을 때, 아찔했다.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우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자영아, 이제부터 숙제는 자영이 혼자 할 수 있지? 그냥 엄마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할게. 만들기 숙제도 지금까지는 엄마가 뭐 만들면 좋겠다고 먼저 이야기했었잖아? 이제부터는 자영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고 엄마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할게!”
“그래도 엄마가 해주면 예뻐서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시는데….”
“자영이가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가면 선생님께서도 자영이 스스로 만든 것 아시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거야. 그러니까 자영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만들어 보자!”
“응!”

딸아이의 첫 여름 방학이 되었다. 안내문 종이에 빼곡하게 아이 숙제가 열거되어 있었다. 만들기 2점. 곤충채집, 즐거운 방학 문제 풀이, 받아쓰기…. 아이 스스로 한다면 방학 내내 숙제만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엄마랑 같이하라고 했어!”
“응, 그래. 엄마도 도와줄게!”
방학 초반에 아이는 숙제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숙제하는 것 보다는 노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림일기만 겨우 잠들기 전 엄마와 놀이처럼 하나씩 쓸 뿐이었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딸아이는 문방구에서 파는 각종 색상이 함께 들어있는 수수깡을 들고 왔다.
“뭐하려고?”
“방학 숙제에 만들기 있잖아. 전에 엄마랑 우리 살고 싶은 집 그린 것을 수수깡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 엄마랑 같이할까?”
“아니! 나 혼자 해 볼 거야. 엄마가 그랬잖아.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라고. 그래서 해 볼 거야!”
아이는 숙제에 대해 나에게 의논하지 않았다. 만들기 숙제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 재료까지 준비했다. 난 딸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내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
“우리 자영이 예뻐 죽겠네! 언제 이렇게 커 버렸을까?”
아이가 칼을 무서워했다. 아이들이 뾰족한 물건을 가지고 놀거나 가위, 칼 등을 옆에 두고 있을 때, 내 쓸데없는 상상력이 동원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의 주의를 시켰었다. 그 때문인지 딸아이는 성인이 된 지금도 칼이나 가위 날카로운 방향이 자신을 향해 있을 때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딸아이가 칼을 무서워했기에 딸아이가 수수깡의 길이를 이야기하면 잘라주었다. 가위로 수수깡을 자르면 모양이 예쁘게 되지 않았다. 찌그러진 수수깡 모습이 풀 붙일 때도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딸아이는 우유 종이 팩을 가위로 잘라 집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파란색 지붕을 만들었다. 수수깡 색깔이 없을 때는 내가 물감을 발라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잘린 수수깡을 붙이고 어떻게 만들지 기획하는 것은 모두 딸아이 몫이었다.

보기에는 형편없는 만들기였다. 그러나 딸아이는 스스로 했다는 것에 저 스스로 대견한 모양이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보더니 수수깡으로 만든 집을 보여주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모두 설명했다.
넓은 판자 위에 이층집이 있고, 그 옆에 자그만 창고가 있으며, 정원에는 색종이 호수도 있었다. 담벼락 아래에는 서툴지만, 종이접기로 만든 종이꽃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일주일 동안 정성스럽게 만든 방학숙제였다.

 
(그림=임솔빈)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방에 들어가 꼼짝하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숙제 검사로 냈어야 할 만들기 숙제를 그대로 들고 왔다. 난 딸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딸아이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가슴에 안겨 울고 있었다.
“왜? 선생님께서 만들기 숙제 때문에 뭐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엄마 어디 가셨느냐고 물어봤어!”
“응? 왜?”
“그러면서 만들기 숙제 다시 해오라고 했어. 이건 쓰레기지 숙제가 아니라고!”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딸아이 담임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방학 숙제를 금세 알아보고 더 칭찬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자영이 엄마인데요. 오늘 자영이가 만들기 숙제를 그냥 들고 왔더라고요?”
“어머니,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 만들기 숙제를 보시면 왜 그냥 돌려보냈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숙제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선생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만들기 숙제를 왜 내주는 거죠?”
“만들기 숙제는 아이의 사고의 능력을 길러주고 창의적인 생각을 길러주기 위해….”
“그렇죠? 그렇다면 지금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만들기 숙제는 아이의 창의력을 보시는 것인가요? 아니면 부모들의 창의력을 시험하시는 것인가요?”
“그건….”
“제가 아이들 만들기 숙제를 직접 보지 못해서 어떤 수준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영이는 일주일 동안 가족이 꿈꾸는 집을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단순한 집이 아니라 가족의 꿈을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쓰레기라고 하셨다면서요? 우리 가족의 꿈이 쓰레기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아이의 노력이 쓰레기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창의적이지 못해 쓰레기라는 것인가요?”
“어머니, 그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 숙제와 비교하면 너무 형편없어서 그만….”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만들기 숙제가 아이들 작품인가요?”
“….”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가 전부인 것이죠? 네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과제물 숙제 보내 드리겠습니다.”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내 성격이지만, 그날은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이 꿈꾸는 집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미니어처 형태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건축 디자인을 하고 있던 친구가 당황해 했다. 사정 이야기를 하며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오늘 밤에 집으로 배달까지 해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깔깔 웃었다.
그날 밤. 누가 봐도 전문가의 솜씨이고,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배달되었다.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놀고, 꽃밭과 정원이 있고, 담 밑에는 봉숭아가 애처롭게 피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황해 하는 목소리였다.
“어머니 보내주신 만들기 숙제 잘 받았는데요. 판매하는 상품을 사서 보내시면 곤란한데요.”
“그거요? 어디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닌데요? 부모가 만들 능력이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부탁한 것인데 안 되나요? 뭐 부모가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어차피 부모 숙제인데! 그 정도면 아이 숙제 점수 A급 나오는 것 맞죠?”
반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학교생활을 건 무모한 반항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 담임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생각을 했었다면 딸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칭찬도 받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엣가시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선생님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 같았다. 처음 만들었던 딸아이의 숙제에 좋은 점수를 주고 스스로 만든 작품이라는 이름을 달아 교실 뒤에 전시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자영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바람에 그냥 나는 괴짜 엄마라는 추억의 인물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숙제는 곧 엄마의 숙제였다. 아이가 스스로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만들었느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함께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의견을 맞추는 것이었다. 또한, 온 가족이 아이 숙제에 머리를 모으고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선수였기에 미술이나, 음악, 특히 만들기 같은 수업은 받아본 적 없는 나와 무엇인가 창작하는 것에는 도통 관심도 없고 기계치인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생각을 더 존중했을 수도 있다. 딸아이에 이어 아들아이까지 있었으니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만들기 숙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그 만들기 숙제로 인해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아이들의 사고를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해 주는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보다 자신이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아이들은 나에게 의논은 하지만 답을 찾지 않았다. 참고만 할 뿐이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까지 스스로 답을 찾는 길을 가고 있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는 내 방문을 열었다.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엄마, 나 조금 무리한 부탁할 것 있어!”
“응? 뭔데?”
“내가 나를 봤을 때, 난 수학이 정말 답 없어. 언어영역은 그래도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능학원에 다녀보고 싶은데 학원비가 좀 비싸.”
“얼마나 하는데?”
“내가 학원비까지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엄마한테 부탁하는 거야. 월 50만 원!”
“그래서 학원은 알아봤어?”
“응, 군산에 수능 전담학원이 몇 군데 있는데. 학원비가 부담이 좀 덜한 곳은 선생님들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특히 수리영역 선생님이 서울에서 유명한 학원 강사였다는데 거기 수업 듣는 애들 말에 의하면 나처럼 수리영역에 기초가 없는 애들은 기초부터 상세하게 알려 준다는데?”
딸아이는 나에게 의논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해결 방법까지 찾았다. 자신의 답을 찾은 후 내게 의견을 물었다. 며칠 두고 생각해 보았지만, 딸아이가 제시한 답보다 더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수능학원을 1년 다녔다. 하지만 그다지 탁월한 효과를 본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는 다시 자신의 문제와 답을 찾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의견을 물을 때 참고서를 제출해 주는 것뿐이었다. 딸 또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나 스킨로션, 클렌징폼 다 썼는데 저녁에 좀 사다 주세요!”
“태훈아, 우리 집 가훈이 뭐였더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자. 알고 있는데,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없잖아요. 저녁 10시에 퇴근인데, 퇴근하면 화장품 가게 문 다 닫잖아요.”
“그러네!”
“엄마 집에 가서 상세하게 이야기할 건데. 10월에 oo그룹 군산 지점 정규직원 모집 공고 나왔는데요. 추천제라고 하네요. 거기 아는 분이 추천해 주기로 하셨어요. 그래서 일단 도전해 보려고 해요.”
“괜찮지. 근데 너 아직 졸업 안 했는데, 졸업하기 전에 취업 관련 서류 낸 거에 회사가 바뀌어도 돼?”
“교수님께 물었더니 상관없다고 하시네요?”
“벌써 물어봤어?”
“아, 엄마 나 과장님이 불러요. 있다 전화 다시 할게요.”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아들아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고 있었다. 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답을 구하지 않았다. 다만 의견을 물을 뿐이었다. 자신이 해답을 찾지 못할 때는 언제나 나의 방문을 두드렸고, 나와 대화 후에는 자신의 답을 찾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신발을 혼자 신고, 옷을 혼자 입는 것이 아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신발을 어떤 것을 신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크고 작은 선택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 답을 찾아주기 전에 먼저 자신이 답을 찾으려 하고 먼저 생각하고, 먼저 답을 찾는 길에 서 있는 것이다. 다만 부모는 그 고민을 같이 하고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하자.”
아이들 아기 때부터 사용했던 가훈.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훈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하얀 칠판에 가훈을 적는다.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게 잘 보이는 곳에 커다란 글씨를 쓴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한 오늘만이 후회를 낳지 않는다.”
오늘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훈을 잘 따라왔듯이 이제부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아껴 쓸 줄 알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인으로 살아주었으면 한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고달픈 오늘에 파이팅을 외치며!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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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때늦은 후회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5)] 설연화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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