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8년12월14일19시11분( Friday )



[ 설연화 ]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9)] 설연화 / 시인·수필가

편집부 기자 (2015년 09월 28일 21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답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이 행복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행복의 기준은 엄마, 아빠와 함께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는 풍경화였다. 네 사람 모두 활짝 웃고 있는 풍경화. 그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은 많았다. 그리고 참아내야 하는 것도 많았다. 행복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생각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행복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가족이 모두 웃고 있는 풍경이라고 하지만, 배경이 어둡다면 그것은 진정 행복한 풍경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에게 엉뚱한 질문을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거예요?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남편의 대답은 무서우리만큼 살벌했다.
“행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이 단칸방에 사는 것이 행복해?”
더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기 전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기댈 언덕 없이 살아가야 했던 남편은 사람 대할 때 분위기에 웃는 것 말고는 진정 마음에서 행복하게 웃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행복이라는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어느 날 소주 한잔 하며 취중 진담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남편은 질문 자체를 싫어하고 화를 냈지만, 뒤돌아서서 한 번쯤은 생각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남편은 시답지 않은 말 그만하라는 말로 대화를 끊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뭔데?”
“네?”
“항상 당신이 물어보잖아. 지금 행복하냐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이냐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내가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
“난 행복해. 물론 당신과 싸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내가 이렇게 왜 사나 싶을 때도 있죠. 더군다나 어린 나이에 아이 엄마가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포기하며 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내 가족보다 형제, 친구가 우선이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내 기준에서 지금 난 행복해요.”
“다 힘든 이야기만 해놓고 행복하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이해해? 그런 것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
“당연하죠. 그런 조건들이 행복한 것은 아닌데, 그런 일들을 모두 잊을 만큼 행복하다는 것이에요. 내 기준에서는 행복하다고요. 난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준비물 사야 한다고 할 때 그 준비물 살 돈을 줄 수 있으면 행복해요. 내가 학교 다닐 때, 준비물 이야기하면 먼저 부지깽이부터 날아왔던 기억이 있어서…. 아이들이 준비물 때문에 학교에 울면서 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행복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뭔가 먹고 싶어 할 때, 집에서 만들어 줄 수 있고, 사 줄 수 있는 돈이 지갑에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전부는 아니잖아? 여자들은 유명 브랜드 옷을 샀을 때, 가방을 샀을 때, 남들보다 더 좋은 차를 샀을 때, 그럴 때 행복한 것 아니야?”
“그것은 욕심이죠.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행복의 조건을 그것으로 잡았다면 당신은 더 불행해 지겠지요. 매일 옆집 누구 엄마는 무슨 옷 얼마 주고 샀다더라. 그런데 난 이게 뭐냐. 시장에서 한 벌에 만 원짜리가 옷이냐 하면서 당신한테 매일 바가지 긁는다면 아이들이 지금처럼 맑게 웃을 수 있을까요? 난 티 없이 맑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얼굴 볼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난 행복하지 않아. 이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것도 싫고, 아이들 옷도 시장에서 오천 원, 만 원짜리 입히는 것도 싫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기댈 언덕이 없는 것도 싫고, 종일토록 중장비 안에서 엉덩이에 굳은살 박여가며 운전하는 것도 싫어.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나 정리하고, 주어진 일이나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보다 더 여유 있게 사는데, 한 달 내내 뙤약볕에서 일해도 남는 것 없는 이 직업도 싫어.”
“자영 아빠.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 덜 살아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요. 내 생각에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세면 난 가난한 사람이 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세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말이 돼? 우리가 가진 것이 뭐가 있어?”
“왜 없어요? 우선 건강한 아이들이 있잖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 세상에 너무나 많아요. 살아가면서 불치병 걸린 아이들도 많고, 사고당해서 병원에서 매일 살아야 하는 아이들도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감사하게 현재까지는 건강하고 밝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첫 번째 재산이지. 거기다가 당신 건강하잖아요? 나도 건강하잖아요? 두 번째 가진 것이죠? 그리고 어찌 되었든 바람 막아 줄 수 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전셋집이 있잖아요? 당신 친구 손 사장 결혼 초기 때 생각해 봐요. 부엌도 없는 월세방에서 비 맞아가면서 밥해 먹고 살았다면서요?”
“그건….”
“그것 봐요. 우리가 더 많이 가졌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힘들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학원도 보내고, 우리가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그래도 아주 조금이지만 저축도 하고….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남편은 수긍하는 것 같았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행복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자신이 깨닫지 않으면 행복한 마음은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성공한 것 같았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때부터 남편은 생각을 가끔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이 생긴 것은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외환위기로 한참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남편 또한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가지고 있던 중장비를 모두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남편이 직접 운전할 중장비만 남기고 모두 넘겼다. 그때 빚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집을 샀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남편은 뜬금없이 한마디를 툭, 뱉었다.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 있으면 난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잉? 무슨 일이래요? 행복하지 않다면서요?”
“당신이 행복하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봤어.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까 그것마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다만, 여기서 조금만 더 여유 있었으면 해서.”
“자영 아빠, 그건 욕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한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여유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오지 않는다 해도 이 자체로 우린 행복한 것이잖아요.”
“그래도 돈 걱정은 안 하고 살아야 하잖아.”
“당신이 재벌이 되면 돈 걱정 안 할까요? 아마 할 걸요? 우리가 천 원짜리 밥을 먹을 때, 그들은 오천 원짜리 먹겠죠? 대신 우리가 만 원이 필요할 때, 그 사람들은 오만 원이 필요할 거예요. 액수의 차이일 뿐, 사는 것은 똑같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리처럼 돈 만 원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지. 분명한 차이는 있잖아?”
남편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많이 낮아졌다. 모든 것을 갖추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기준도 사라졌다. 분명한 것은 경제적인 부는 편리할 수는 있지만, 행복의 기본 조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남편이 그것을 이해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아이들은 행복의 틀 안에서 밝게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남편에게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불행한 이유는 뭘까요?”
그 질문에 남편은 망설임이 없었다.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불행한 것은 아니지. 돈이 없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잖아? 좀 불편하고 걱정이 많을 뿐이지.”
“그것 봐요. 그러니까 돈 많은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봐요. 사람들이 하는 말 있잖아요.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다시 뒤집어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보다 내 삶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이 사람아, 그래서 이만하면 행복하니까 이것만 벌어도 되겠다고 내가 안주해 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런 말을 해?”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행복도 지켜야 유지되는 것이잖아요. 행복은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지켜갈 수 있을 때 계속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림=임솔빈)

남편이 난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남편은 집에 들어올 때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물론 밖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집에서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버리는 성향도 있었지만, 그런 날보다 웃으며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아졌다. 딸아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 남편은 직업을 바꿨다. 같은 건설업이었지만, 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그전에는 한 달에 며칠씩 외지에서 일했지만, 직업이 바뀐 뒤로는 한 달에 며칠만 군산에 있었다.
인천에서 5년 동안 공사를 맡아서 하던 때였다. 하나의 공정을 끝내고 다음 공정까지는 여유 시간이 있어 한 달 정도 군산에 머물러 있었다. 집에 들어올 때, 손에 서류가방 말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들고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남편이 손에 잡다한 검은 봉지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과일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좋아하는 분식이 종류별로 조금씩 다 있었다.
“아이고 누가 이걸 다 먹어요?”
“아니,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좋아할 만한 것은 다 샀지 뭐!”
“물어나 보고 사지 그랬어요.”
“엄마, 우리 다 먹을 수 있어요. 아빠 쏘신 김에 양념치킨도 쏘세요!”
“그럴까?”
“난 저녁 안 해도 되겠네?”
“이렇게 저녁 한 끼 먹는 것도 괜찮아!”
“아빠가 인천 가시더니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랬다. 남편은 인천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언제나 함께 있는 가족의 웃음이 행복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도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날 밤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별 기대하지 않으면서 습관처럼 질문을 던졌다.
“당신 지금은 행복해요?”
“당연하지. 나처럼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난 어리둥절했다. 남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이들을 불렀다. 왜 아빠가 행복한 것인지 아이들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시네!”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안방으로 들어왔다. 딸아이는 호들갑스럽게 남편의 품에 안기며 애교를 떨었다.
“아빠, 진짜 행복하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우리 예쁜 딸이 이렇게 애교 떠는데, 아빠는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행복하지!”
“근데 난 당신 생각이 왜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인천에 무슨 생각의 요술 주머니라도 숨겨놨어요?”
“인천에서는 현장 사람들과 동고동락을 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다가 보니 그 집 사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게 되어 있어. 일 끝나고 숙소로 들어가면, 정말 집에 아무 일 없이 아내랑 전화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전화는 자주 오는데, 대부분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전화이거나, 아프다는 전화. 아니면 돈 없다고 투덜거리며 싸우는 전화가 대부분이야.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 한 방에서 생활하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 그런데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내가 고민하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 사람들이랑 나를 놓고 비교하니까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더라고.”
“그것 봐요. 당신이 가진 것이 더 크게 느껴질 때, 행복함도 함께 오는 것 맞죠?”
“물론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닌데, 부족하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고.”
그 이후 남편은 완전하게 바뀌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제들에게 정을 찾았던 남편은 가족이 우선이 되었다. 밖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집에서 더 화를 내던 사람이 화는 밖에서 모두 풀고 들어와 집에서는 환하게 웃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행복한 웃음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딸아이가 대학 2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이 되어서 집에 온 딸아이는 오자마자 안방에 앉아 남편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둘은 그림을 가운데 두고 있었고, 딸아이가 설명했다.
“엄마도 들어 봐. 이 그림은 미술 심리학 시간에 내가 그런 것인데, 나중에 한 사람씩 면담했거든. 그런데 교수님이 날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더니, 나보고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그림 설명을 해 주셨어. 우선 집이 있고, 유리창이 크잖아? 문도 크고, 네 명의 가족이 모두 울타리 안에 있는데,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그림이잖아? 이 그림은 가족의 행복을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고 그 자체로 간직하고 싶은 거래. 또 가족이 모두 웃고 있어서 소외당하는 사람도 없고, 배경색이 모두 밝고 그림 자체가 밝은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아이 때부터 행복한 사람에게 나오는 특징이래. 엄마 난 교수님이 점쟁이인 줄 알았어.”
그때 불쑥 아들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르바이트하고 늦게야 들어오는 길이었다.
“나만 빼놓고 셋이서만 노는데 뭐가 행복해! 난 안 행복해! 집에서 왕따 당하잖아!”
“아 우리 아들이 왜 이러실까? 우리 오래간만에 네 식구 다 모였는데, 치킨에 맥주 어때? 엄마가 쏜다!”
“치킨, 맥주 때문에 오늘은 내가 용서했어. 콜!”
그날 밤 대화의 주제는 행복이었다. 행복은 아주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녔을 때, 행복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한 사람만 노력하지 말고 모두 함께 행복을 지켜가자는 것에 의견이 모였다.

물론 매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 오해가 생겨서 토라지기도 한다. 남편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기도 하고, 어떤 불만이 생겨서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꾹꾹 눌러놓기만 하다가 어느 날 폭탄 터지듯 터트리는 내 성격 때문에 모두 긴장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이다. 매일 행복하다면 진정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힘겨운 날일수록 행복한 날을 떠올리고 그날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며 내 욕심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진정 행복한 날을 위해 갈등도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매일 싸우고, 매일 갈등인 상황에서 아이만 행복할 수 있을까? 가끔 자신에게 자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행복해? 네 행복의 기준이 뭐야?”
난 오늘도 행복하다. 이렇게 혼자 자문하고 찾을 수 있는 답이 있어서. 철없는 질문에 항상 답해 주는 가족이 있어서. 아이들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난 오늘도 행복한 엄마가 된다. 내일은 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행복하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은 40화(10월 5일)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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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엄마는 나의 롤모델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40-최종회)] 설연화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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