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년02월19일17시06분( Tuesday )



[ opinion ]

너무 힘들고 슬펐던 인연

[전북교육신문 칼럼-‘시선’] 김연탁 / 진기승 민주노동열사 2주기에 즈음하여

편집부(2016년 05월 23일 12시)


진기승 민주노동열사 2주기에 즈음하여
- 김연탁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처장)

2014년 4월 30일, 그가 투신을 했다.

투신하기 한 달 전, 그를 보았을 때, 희망적인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돌아선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술 한 잔 하며 “그래도, 투쟁이 희망이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요량이었는데... 끝내 하지 못한 채, 그를 보냈다.

4월 30일, 세월호 촛불추모집회 후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간단히 마치고 귀가했다. 그리고, 12시가 다 되어서 전화를 받았다. 보도자료를 내야 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계속 독한 커피만 냅다 들이부었고, 끝내 의자에 앉은 채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그리고, 84일에 걸친 투쟁이 진행됐다.

진기승 열사와 처음 안면을 튼 것은 전주시내버스 일차파업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11년 1월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종합경기장 옆 팔달로에서 집회를 개최했는데,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도 조합원들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길가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일부는 경찰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조합원들을 대열로 합류시키느라 있는 대로 진을 빼고 있었다. 그런데, 조합원 한 명이 쭈뼛쭈뼛 길가에 서 있는 것이었다. 달려가서,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려면, 집에 가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조끼를 안가지고 왔어요”라고 했다. 맨날 드센 조합원들만 보다가 순박한 그가 신선했다.

그리고, 잠깐 스치듯 얼굴을 보며 인사만 나누다가 두 번째 인연은 2011년 8월 말, 민주노총전북본부 대표자수련회였다. 선운산 유스호스텔에서 열렸는데, 안주가 보신탕과 통닭이었다. 자연스럽게 보신탕을 안 먹는 나는 술자리에서 소외되었다. 그런데, 그가 내 앞으로 술잔을 내미는 것이었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주로 버스의 현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버스 1차 투쟁에 흥분되어 있었고, 열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씩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구속과 해고투쟁으로, 나도 지역본부 사업으로 바빠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동안 통 보지 못했었다. 오랜만에 2014년 3월 말에 잠깐 신성여객에서 보았다. 그는 해고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조급해하며, 비관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현실이 안쓰러웠지만, 이 상황 또한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여, 섣부른 희망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만남이 그와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그의 명예회복과 노동탄압분쇄투쟁은 그가 병석에서 투병하던 33일을 넘어, 운명하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장례식장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의 가족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집회에서 낭독할 글을 봐주기도 했다. 그리고, 부인과도 안부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 견디던 가족들이, 7월 5일 잠정합의를 신성여객 사측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후에 조급해하며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신성여객 조합원 몇 명이 모여 소주 한 잔을 나누고 있는데, 부인이 곁에 와서 조용히 묻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 나는 순간 4개월 전의 진기승 열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서 부인을 다독이고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길어야 2주를 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 말대로 2주일이 지나지 않아 투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순탄하지 않았다. 사측이 약속했던 장례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바람에 장례식장 측에 의해 영구차가 제지당하기도 하였고, 망월동묘역에서는 5․18 유족의 반대로 몇 시간 동안 시신을 안치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안치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또 한 번 모욕을 들어야 했다.

진기승 열사와의 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진기승 열사 투쟁백서 발간의 책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4개월여 동안의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쓰러지기까지 했지만, 다행히 그 소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록 힘들고 굴곡진 생애였지만, 지조 있는 진정한 노동자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악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시간이었다. 2년이 지났다. 오늘 밤에는 이제 그와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실천해야겠다. “노동해방과 버스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하여, 건배!!”


(▲사진제공=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진기승 열사는”
2009년 5월에 신성여객에 입사하였으며, 2010년 민주노조가 결성되자, 10월 1일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사측의 노동탄압과 공격적 직장폐쇄(법원에 의해 부당한 직장폐쇄로 인정됨)에 맞서 쟁의행위 중 2012년 6월 구속되어 9월 12일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출소했다. 그 후, 신성여객 사측은 11월 1일 징계위원회에서 해고하였고, 함께 해고통보를 받은 조합원은 재심에서 해고가 취소되었으나, 진기승 조합원은 사측에 강성조합원으로 찍혀 해고되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단체협약 위반으로 부당해고로 인정되자, 2013년 3월 4일 사측은 동일한 사건으로 다시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여 또 다시 해고하였다. 해고기간동안 신성여객 사측은 끊임없이 진기승 조합원에게 복직을 미끼로 농간을 부렸었다. 2013년 4월 30일 저녁 11시 15분쯤 회사옥상 국기봉에 줄을 매달아 목에 매고 아래로 몸을 던져 투신하였다. 뒤늦게 조합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33일 동안 투병하다가 6월 2일 숨을 거두셨다. 이후, 신성여객 사측이 책임을 회피하여 노동자들과 지역시민사회단체 및 양심적 시민들의 투쟁으로 7월 20일 장례 및 보상, 민주노조활동보장에 합의하고, 7월 22일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망월동묘역에 안치하였다.
한편, 진기승 열사의 투신 하루 뒤인 2014년 5월 1일 행정법원에서 부당해고가 인정되었다.



※ 김연탁 사무처장의 칼럼을 월1회 게재합니다(편집자).



[광고]


        트위터로 보내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20대 총선과 노동자·민중의 삶
[전북교육신문 칼럼-시선] 김연탁(민주노총전북본부 사무처장)


   

+ 최신뉴스

김동원 전북대 총장 취임
우수인재양성 시스템, 약대 유치, 산학교육 변화 등 밝혀


순창 유소년야구대회 23~28일
64개 지역 140팀 참가 ‘최대 규모’...초3~고3까지 4개 리그로 치러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지정
황토현전승일인 5월 11일로...19일 국무회의 의결


완주교육지원청 신청사 ‘첫 삽’
전주에서 완주로 이전...2020년 3월 목표


100회 동계체전에 전북 학생 208명 출전
19~22일 빙상, 컬링 등 5개 종목 참가...아이스클라이밍 등 시범종목도

 





회사소개 | 개인정보관리지침 | 청소년 보호정책 | 저작권 안내 | 광고안내 | 고충처리
 

제호: 전북교육신문 | 등록번호: 전라북도, 아00066 | 등록일자: 2013.11.6 | 발행인: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 임기옥

편집인: 문수현 | 종별:인터넷신문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380 (금암동)

 

전화: 070-7434-4800 | 팩스: 063-900-3789 | 메일수신: jbenkr@gmail.com | * 전북교육신문은 전북미디어언론협동조합에서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