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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왜 한국서만 발생했나

[기고] 노동자-시민에게 화학물질 알권리 보장해야 / 강문식

편집부 기자 (2016년 05월 26일 09시)


2011년 무렵부터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무렵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착수하면서 피해자들의 공통점에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그 이후 각종 시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첨가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이 폐질환을 유발했음이 밝혀졌다.

확인된 사망자만 230명이 넘고, 잠재적 피해자까지 합치면 피해자 규모가 30여 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재해다. 비슷한 유해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업체는 옥시렌킷벤키저 뿐만 아니라, 애경, SK,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재벌 기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재해의 시발(始發) : 왜 한국에만 피해가 발생했을까?

1994년 유공바이오텍(SK 전신)에서 제조한 가습기메이트 제품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시초이다. 유공은 1996년 PHMG 제조 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당시 PHMG는 피부, 경구 섭취 시 독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었지만 흡입과 관련된 연구는 이루어진 바 없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독성자료를 요구하거나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않고서 관보에 “유독물에 해당 안됨”이라고 고시했다. 그리고 2001년부터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에 PHMG 성분을 포함시켜 제조하기 시작했다.

2003년, 호주 국가산업화학물질 신고 평가 기관(NICNAS)이 발간한 보고서에는 PHMG의 흡입 독성이 명기되어 있다. SK글로벌(호주법인)이 SK화학의 PHMG를 호주로 수입하기 위해 호주 ‘산업화학물질신고평가법’에 따라 PHMG에 대한 유독성 정보를 제공했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첨가물은 CMIT/MIT의 독성평가는 1998년 미국 환경보호국(EPA)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보고서에도 CMIT, MIT의 흡입독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유해 물질이 제품 생산에 사용된 것은, 그만큼 한국의 화학물질 안전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물질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신규 산업의 탄생에 따라 사용이 늘어나는 각종 신규화학물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하지만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화학물질 4만4000여 종 가운데 6800여 종의 화학물질을 제외한 나머지 85%는 유해성 정보도 확인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제기되는 의혹을 하나 추가하자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계가 PHMG의 유해성을 최소한 2003년 무렵부터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화학업계는 2003년 당시 호주 수출을 위해 위험성 평가를 진행했고, 이 자료에 흡입 유해성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유해성을 알면서도 생산을 중단하지 않은 것이라면 고의적인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요구와 대안

유해한 제품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보다 생산하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제품 생산 노동자들이 훨씬 높은 농도의 유해 원료에 훨씬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이다. 아직 가습기 살균제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피해 사례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후 피해가 드러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관계 당국은 가습기 살균제 생산 공정에 참여했던 생산직·연구직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가 없는 지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생산과정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한 점검도 필수적이다. 혹시 피해 사실이 한 건이라도 드러난다면 즉각 전수 검진 및 역학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생산 공정이라 함은 완성품 공정뿐만 아니라 첨가 유해물질인 PHMG, PGH, CMIT, MIT 등을 생산한 공정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업체의 하청업체, 납품업체 등까지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안전한 제품은 소비자에게도 안전하다. 현재 옥시 사건의 초점이 주로 소비자와 불매운동에 맞춰져 있지만 생산과정, 즉 노동의 문제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노동자가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무엇인지, 그 물질의 위험성이 어떠한지 알권리가 보장된다면 전체 노동자․시민의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도 증진될 것이다. 이를 위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고 위험성 평가가 진행되지 않은 화학물질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특히 위험성 평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화학물질평가등록법」을 후퇴시키려 드는 정부, 경총, 전경련의 시도를 저지시켜야 한다. 기업살인법, 징벌적배상법 제정 등을 통해, 생산, 소비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한다면 기업에 책임을 묻는 사회적 제도 마련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기업들은 ‘유해성’이 증명되지 않으면 사용해도 된다는 태도로 대부분의 화학물질을 규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다 백혈병 등 각종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은 유해성이 입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초유의 화학물질사고가 발생한 것은 노동자-시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부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발생해도 수년이 지나도록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상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기업 봐주기 풍토가 이어진다면 옥시 사건과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노동자·시민은 실험도구가 아니다. 안전하다고 증명된 물질이 아니라면 사용을 즉각 금지해야 한다.

※ 강문식님은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부장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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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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