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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 ]
[기고] 『인권 오디세이』를 읽고

최성원 | 교육행동 앵그리맘 연대 공동대표


편집부 기자 (2016년 06월 27일 10시05분21초)


※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 다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묻는다』
: 조효제 지음, 교양인, 2015

(사진=최성원)

이 책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작가의 오랜 여정의 기록이다. 그 길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인권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다. 1장은 역사 속에서 존엄성 확보의 증거들을 수집하려 했고 2장에서는 작가의 발길이 거쳐 간 세계 각지의 관찰을 담았다. 3장은 인간 존엄성을 둘러싼 각종 논쟁의 현장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비평한 글들이다. 마지막 4장은 학생, 운동가, 시민, 독자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았다.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처음부터 ‘human right’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처음엔 자연권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사람(남성)의 권리(rights of man)’라고 쓴 적도 있다. 토머스 페인이 1791년에 내놓은 <인권>의 원 제목은 ‘rights of man’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서도 남성형 ‘사람(homme)’이 쓰였다. 중립적으로 ‘인간(human)’이라는 말은 누가 맨 처음으로 썼을까? 여러 주장이 있지만 1849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 ‘human rights’가 나오는 건 확실하다. “사람을 부당하게 투옥하는 국가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진정한 장소는 감옥뿐.” 이라는 유명한 구절 직전에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엔헌장에 드디어 ‘human right’ 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고 그것이 1948년의 ‘세계 인권 선언’으로 구체화되었다.

권리(right)라는 말은 좀 더 복잡한데 여러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원래 도덕적이고 반권력적이고 장중한 어감을 지닌 ‘right’ 개념이 권력과 이익과 힘의 느낌을 주는 ‘권리’로 번역되면서 본뜻이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한다.

인권 운동에서도 ‘right’에 내재된 두 측면이 동시에 발현되곤 한다. 첫째 ‘정당하고 옳은’ 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견되고 발굴되므로 인권 운동은 필연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인권을 윤리적인 어떤 절실한 포부로 이해할 때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와 비정상과 억압을 무너뜨릴 만병통치약으로서 인권을 호명하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둘째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 인권에서는 입법화와 제도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긴다. 어떤 근거로 주장하는지, 그 요구를 들어줄 의무를 지닌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규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리의 객관적 규범성과 주관적 요구 자격의 결합, 이 점이 인권 개념을 여타 인도적 개념과 구분하는 핵심이다.

군대를 버린 나라

이 책 <인권오디세이>는 인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여러 가지 주제들을 옴니버스식으로 엮었는데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국가 코스타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국력을 평가할 때 흔히 인구, 국토 면적, 경제 수준, 군사력, 과학 기술 수준, 환경 관리 능력등을 꼽는다. 이중에서 경제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는 강대국 중심의 힘의 논리에 가까운 기준이다. 그렇다면 선린 우호니 세계 평화니 하는 이상을 국제 정치에서 실현하는 나라가 있기는 한 것인가. 인구 470만에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한 크기의 소국 코스타리카. 남북 아메리카 정중앙에 위치하며 국내총생산 530억 달러로 세계 81위, 1인당 GDP는 1만 달러가 조금 넘는 세계 68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군대는 아예 없앤 나라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에서 코스타리카의 영향력은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코스타리카에는 남북 아메리카 전체를 관할하는 미주 인권 협정에 따른 국제 기구인 미주인권재판소가 있다. 1979년 설립될 때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 유치하려 했지만 결국 코스타리카로 낙찰되었다. 또 이곳엔 유엔 평화대학이 있다. 유엔 총회에서 조약 기구로 설립한 독특한 교육 기관이다. 코스타리카는 외교 수완과 주도력도 뛰어나 유엔 인권최고대표실을 창설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기록이 있으며 무기 거래 조약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중미를 휩쓸던 내전과 분쟁을 종식한 에스키풀라스 평화 협정은 코스타리카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엘살바도르와 니콰라과의 자유선거도 지원했다.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의 연합체인 리우 그룹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대변국 역할을 맡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인권, 평화 외교는 기존의 국제 관계 이론으로는 설명이 잘 안된다. 이 때문에 권력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학자도 있다. 코스타리카는 국가가 보유한 양적 개념으로서의 국력이 아니라, 실제로 행사하는 질적 개념으로서의 국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질적 개념으로서 국력이란 첫째, 정치적 행정적 역량이다. 외교 기술, 특정 영역의 지식과 축적된 경험, 주도권을 발휘할 줄 아는 적극성이 그것이다. 둘째, 이미지와 평판이다. 이른바 능동적 규범 행위자로서의 정체성과 국제 문제에서 중립을 지키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모든 외교는 내치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아무리 대외적 영향력을 높이려 해도 국내에서 인권을 안 지키면 국제적으로 망신만 당할 뿐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인권을 지향하면서 대외적으로도 그것을 추구한다. 완벽한 나라도 아니고 문제도 많지만 인권 국가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지난 5월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대통령 궁에서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함께 게양할 정도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 한 것처럼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2014년 12월 1일 대통령이 참석한 군대 폐지의 날 행사가 열렸다. 66번째 기념일이었다. 아마 군대 폐지를 기념하는 나라는 이곳이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1948년 호세 피게레스 페레스 대통령이 군대 폐지를 선언한다. 사령부의 요새 건물은 국립박물관이 되었고 전국의 병영은 학교로 바뀌었다. 이듬해 채택된 제2공화국의 신헌법 12조는 “항구적 제도로서 군대는 폐지한다.” 라고 선언한다. 헌법 외에 공법 178호인 군대 폐지법을 따로 제정해 체계적으로 군을 완전히 해체했다.

1948년 대통령 선거는 여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실시되었다. 집권 여당인 국민공화당의 칼데론 가르디아 후보와 야당인 국민통합당의 오틸리오 울라테 블랑코 후보가 맞붙은 선거는 부정 혐의로 얼룩졌고 선관위는 울라테의 승리를 선포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에 불복하여 의회를 소집하고 재선거를 결의한다.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이 와중에 농장주 출신 호세 피게레스가 등장한다. 그 전부터 기존 권력에 비판적인 인물로서 망명지 멕시코에서 돌아와 권토중래를 꿈꾸며 국민해방군이라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때를 노리고 있던 터였다. 피게레스는 혼란에 빠진 조국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1948년 3월 12일부터 5주 동안 피의 살육이 벌어져 약 2천에서 4천 명의 사망자를 낸 내전은 피게레스 측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임시 정부의 수반으로 취임한 피게레스는 일련의 개혁 조치를 취했다. 5만 콜론이 넘는 자본에 일률적으로 10퍼센트의 세금을 부과했고 은행을 국유화했다. 국영 전력 회사를 설립했고 카리브해 연안의 바나나와 커피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미국계 다국적 기업 유나이티드푸르트에 중과세를 매겼다. 이 모든 조치에 더해 군대 폐지라는 화룡정점을 찍은 후 원래 약속대로 18개월의 집권을 끝내고 울라테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퇴진했다.

군사비를 교육, 보건 의료, 환경, 문화에 투자 할 수 있어 인간 개발지수가 올라간다. 코스타리카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생산성이 라틴아메리카 최상위 수준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행복 지수에서도 상위를 차지한다. 코스타리카에 사는 미국 은퇴 생활자들의 토론방에 어느 할머니가 올린 글이다. “미국에선 전쟁, 승리, 패배의 담론이 일상 은유에까지 스며들어 있는데 이곳에선 그런 것이 없다.”

이 나라에서 군대를 폐지하던 날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다.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차이가 안보 개념의 상상을 원천적으로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군에 의존한 안보를 줄이면서 인권, 평화의 소프트 파워와 외교력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악의 평범성

국가적 단위에서 힘의 원리가 아닌 평화와 선린의 관계가 가능함을 보여준 예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면 주어진 일을 그저 ‘성실’하게 수행하는 개인이 그 자체로 거대한 악을 내재 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보통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같은 악을 행하는 사람은 특별히 사악하거나 남다른 인생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1961년 4월 11일 나치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은 한 개인의 처벌을 넘어 홀로코스트 전체를 응징하는 역사적 교훈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서류 증거물뿐 아니라 수많은 피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채택되었다. 옛 나치들의 증언도 수집했다. 수용소에서 4백만, 즉결 처형 아사 2백만으로 합계 6백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는 통계가 애초 아이히만이 스스로 한 자랑을 통해 나왔다는 증언도 이렇게 해서 확보되었다. 아이히만의 죄목은 1950년에 제정된 ‘나치 및 그 부역자 처벌법’ 에 근거했는데 수많은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 뿐 아니라 폴란드인, 슬로베니아인, 집시, 체코 어린이들을 박해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였음을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법적으로 무죄라고 강변했다. 히틀러의 명령을 수행한 일개 ‘교통 경찰’에 불과했다는 논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말 사형이 언도되었다. 1962년 5월 31일 밤 교수형을 집행한 후 유해는 즉시 화장되었고 해군 경비선이 그 재를 지중해의 공해상에 뿌림으로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의 재판을 거론하면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라는 부제를 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했다. ‘악의 평범성’ 이 한마디가 아렌트의 주장을 완벽하게 주장하면서 이 책을 역사적인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평범하고 진부한 인간형에서 악이 발현될 수 있다고 한 아렌트의 주장이다. 탁상 살인자 아이히만은 자신을 평균적 도덕률을 가진 정상인으로 인식했다. 무관심, 진부함, ‘파괴적’ 평범성, 우리 주변에 만연한 것들이다. 사회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외면해버리는 교육 현실이 미래의 잠재적 악을 키우는 것은 아닐까?


 
▲출판사 제공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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