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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 ]
아픈 동생의 언니라는 자리

[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⑤]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편집부 기자 (2016년 09월 01일 10시15분30초)


(사진=김하나)

오늘은 도현이의 이야기가 아닌, 든든하고 예쁜 큰딸 민진이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민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엄마가 도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고 옷을 들춰 자기 찌찌를 물리고, 동생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와 가슴을 토닥토닥 해주던 착한 언니... 민진이는 귀여운 아가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었다.

도현이가 태어난 다음 해에 처음으로 도현이의 병이 발병되고 온 가족이 병원에 매달려있는 동안 민진이는 외가에 맡겨져 얼마간 지내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도현이는 병원에 자주 입원했고 민진이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민진이는 어릴 때 오줌싸개였다.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유치원에 갔다가 하원할 때 다른 옷을 입고 온 적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1학년 때에도 학교에서 실수를 해서 여러 차례 옷심부름을 시켰었다. 그때는 민진이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화를 내고 야단을 많이 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진이는 도현이가 아프거나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그러한 증상이 나타났었다. 소아 빈뇨증은 불안감이 원인이라는데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나 힘들다고 내 자식 힘든 마음 안 알아주고 못 챙긴 것 같아 죄책감도 든다.

한번은 민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도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밖은 깜깜해서 무섭고 슬슬 배도 고픈 거야. 근데 차려먹기도 무척 귀찮더라고... 그러다 갑자기 서럽고 슬픈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쏟아졌어. 가족들은 모두 도현이 생각만 하고 도현이 걱정 뿐이잖아. 도현이가 많이 아프다던데 나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어. 도현이는 아마 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전혀 모를 거야. 아니,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내 마음을 절대 이해 못할 거야. 그때 도현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도현이만 없으면 가족들 모두 행복해질 것 같았어. 그 생각을 하고나니 갑자기 무서워졌어. 언니로서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다는 게 두려웠어.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어. 잘못했다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그런 말하지 않을 테니 내 동생 꼭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민진이는 그때 일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펑펑 우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애 아빠도 나도 같이 울었다. 민진이의 말을 들으면서 그 마음의 상처가 느껴져 오래도록 가슴이 아렸다.

도현이가 많이 아팠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네 살, 일곱 살, 아홉 살, 열한 살... 민진이도 아기였고 무척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나는 민진이를 마냥 큰 아이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일들을 스스로 알아서 해주길 바랐고, 그러면서도 완벽하고 야무지게 해내기를 기대했다. 아픈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건강한 자식에게 너무 큰 짐을 실어준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민진이가 식빵에 크림치즈를 발라먹고 있었다.
“언니, 나도 크림치즈!”
마치 자기가 맡겨 놓은 식빵을 찾아가듯이 당당하게 크림치즈 발린 빵을 주문하는 도현이. 그 순간 나는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민진이의 나이 중2. 감히 중2를 겁도 없이 하인 부리듯 하는 도현이를 보며 곧 벌침이 날아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 걸? 아무 말 없이 순순히 빵에 치즈를 발라 도현이에게 건네주는 게 아닌가?
내가 상상했던 다음 상황은
“야! 니가 발라먹어.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라며 면박을 주는 상황이었는데...
“월~이민진~웬일이야? 도현아, 민진이 언니 너무 착하다. 친절하게 크림도 발라주고.”
“내가 수액 꽂고 있어서 언니가 잘해 주는 거야.”
“그래? 도현이가 수액 맞고 있으면 언니가 잘해 줘?”
“응.”
이건 몰랐던 일이다. 다른 자매들이 그렇듯 평소에는 티격태격 툭하면 말싸움을 해대는데 도현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 수액을 맞고 있으면 알게 모르게 언니가 잘해 준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민진이가 한마디 덧붙인다.
“어제 내가 자려고 누웠는데 불을 끄기가 너무 귀찮은 거야. 그래서 도현이한테 불 끄라고 소리 질렀거든? 근데 아무말 없이 와서 끄고 문 닫고 가는 거야.”
“뽈대(링거대) 끌고 와서?”
“응, 그러니까~ 완전 감동받았어.”
도현이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수액을 맞는데 집 안에서 뽈대를 끌고 다니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병원 뽈대처럼 바퀴가 무겁고 튼튼한 게 아니라서 잘 굴러가지도 않고 잘못하면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뽈대를 끌고 와 방문을 닫아주고 간 게 감동이라는 것이다.
현대판 <의좋은 형제>인가? 별것 아닌 일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흐뭇해진다.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빨대컵을 들고 포즈잡는 자매. 눈만 마주치면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이지만 밖에서는 누구보다 살갑게 서로를 잘 챙기는 예쁜 딸들이다.

민진이를 보면 아픈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보다 언니로 사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관심받고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그 관심이 아픈 동생에게만 몰린다는 생각에서 오는 박탈감과 피해의식.
다른 것에 신경쓸만한 여유가 없는 부모이다 보니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기에 느꼈을 압박감과 스트레스.
그러면서도 큰아이에 대해 거는 기대로 인한 부담감.

나는 농담처럼 민진이에게 “AB형이라서 속을 알 수 없다”고 투덜대지만 실제로 민진이는 자신의 속마음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아픈 동생 때문에 부모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자기도 힘들다고 투덜대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사랑해 달라고 속상함을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표현하지 않는 성격으로 굳어진 게 아닌가 싶어 부모로서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다. 나에게 있어 도현이는 약한 손가락이라 더 아픈 손가락이고, 민진이는 건강한 손가락이기에 자랑스러운 손가락이다.
도현이처럼 아픈 아이들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동정을 받을 수도, 배려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 형제·자매들은 똑같이 힘든 과정을 견뎌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나부터도 우리 민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배려하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반성한다.

이 기회를 빌어 대한민국의 수많은 민진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쓴이 김하나는]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에도 꾸준히 문학을 가까이 하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 아픈 아이를 키우다보니 힘들 때도 많지만 덕분에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소중한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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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아이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⑥] 김하나 / 꿈사랑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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